[허순강 세무사의 X파일]기업세무관리 비법(3)

2005.11.28 00:00:00

밀조주 단속

어렸을적 시골의 농번기나 명절때면 동동주나 막걸리를 담가 마셨는데, 이때 찾아오는 불청객이 세무서 밀조주 단속반이었다.
목격한 적은 없지만 어른들의 말로는 이들이 출동할 때면 마을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학교졸업후 어쩌다 세무공무원이 됐고, 동네 어른들의 당부는 '밀주단속 심하게 하지 마라' 였다.

그 시절 소주나 맥주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때이고, 양조장 주인은 동네 최고 유지였고, "양조장 주인은 세무서의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술에 관한 한 세무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세무서에 들어와서 밀조주 단속을 한 것은 오직 한번뿐이었고, 그것도 직접 조사가 아닌 동원된 것이었다.

서울역앞 집창촌 양동·도동을 기억하고 있는가? 지금은 세계적인 호텔과 국내 대기업의 사옥들로 가득 차 있어 그곳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집창촌였다는 것을 젊은 세대는 모르리라.

'81년 남대문세무서는 대우·금성(현 엘지)그룹 사옥과 남대문교회와 양동 집창촌에 둘러싸여 묘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 부임해 얼마간은 집창촌의 포주 아줌마들의 "놀다 가세요"라는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들어야 했다.

그 해 여름 오후 밀조와 관련한 제보가 접수된다. 장소는 바로 집창촌내의 건물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확인해 보니 5평남짓 되는 방에 플라스틱통에 비위생적으로 처리되고 있는 술이 발견됐다. 주류조합의 합동 단속요원들이 그 술들을 일부 증거물로 보존하고 나머지는 수거해 폐기처분했다.

단속반장에게 밀조를 한 것으로 보이는 60대 중반의 할머니가 대뜸 "××, 또 왔어" 한다. 단속반장은 "할머니, 밀조를 하려면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조용하게 하세요"라고 한다.

제보의 발단은 그 건물이 일부는 집창촌로 사용하고, 또 일부는 집없는 근로자나 실직자 등에게 숙박시설로 사용되는데 하루 방값 3천원, 물값 1천원, 전기값 1천원을 지불하는데 모든 전기와 물은 이 할머니가 사용하면서 나머지 투숙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며 이들 투숙자들이 세무서에 계속 제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할머니에 대한 자세한 신상 내막은 모르지만 반장의 말을 종합해 보면 젊어서는 창녀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포주 아줌마로, 할머니가 돼서는 밀조를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할머니의 모든 언행은 증오로 가득 차 있고 법이 무엇인지 알지도 알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10여차례 반복된 행위로 인해 세무서에서는 밀조혐의에 대해 벌과금을 통고 처분했으나, 벌과금을 내지 않아 검찰에 주세법 위반으로 고발 조치됐다.

검사 앞에서 이 할머니는 "차라리 교도소를 보내 주시오. 거기서는 밥은 주겠지" 한다. 검사들도 처벌의 실익이 없음을 알고 세무서의 계속된 고발을 오히려 난처해하는 형편이었다.

모든 범칙전말서를 작성한 반장이 할머니에게 "검사가 부를 것입니다. 거기에서 말씀하세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 부르든지 말든지"하며 나간다.

이 할머니가 살아있다면 90세가 넘었을 것이다.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다. 어떤 과정에서 그러한 삶을 살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눈가에 얼굴에 드리웠던 힘든 삶이 지금도 생각난다.

"할머니, 이승에서 삶이 힘들고 고달팠지요. 무덤에서 편히 쉬세요. 할머니가 생활했던 그 곳은 초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답니다."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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