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5)

2006.11.21 14:07:02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6.  말썽꾸러기 두 녀석

 

[사고 2]

 

그 당시 국세청내에서 화제가 됐던 '월남편지 사건'의 장본인이 바로 우리 두 놈이다. '67년 9월경 나는 1차로 현재 종로세무서 자리에 있던 교육원에서 신규자(新規者)수습교육을 받고 안동으로 내려와서 세무서에 출근을 하니 서장님께서 나를 찾는다고 한다.

 

'오호라! 우수한 교육성적으로 안동세무서를 빛냈다고 칭찬을 하실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꾸벅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칭찬은 커녕 서장님의 표정이 어찌 심상치 않다.

 

서장님은 두툼한 편지봉투를 나에게 던지면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이걸 자네가 썼는가?!"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편지를 주워들고 얼른 읽어보니 글씨체가 영성이가 쓴 것이 틀림없었다.

 

"네! 제가 썼습니다."

 

"함 읽어봐! 큰 소리로!"

 

나는 그 편지를 도저히 소리 내어 읽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사위감 보아라'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그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욕(慾)으로 일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남녀(女)의 생식기를 삽화로 그려 넣고 그것을 욕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서장님 양복 윗도리에 '단산옥 김 마담은 내꺼!'라는 글을 붙여 골탕 한번 먹여보자는 등 그 내용이 기가 막혔다.

 

'큰일났구나! 이 자식이 기어코 또 일을 저질렀구나'라고 생각하며 부동자세로 그냥 서 있었다. 서장님은 크게 화를 내셨다.

 

"야! 이 친구야! 공무원이 이럴 수 있어?"

 

"지금이 어떤 시기냐?"

 

"이 편지가 직접 나한테 와서 천만다행이지, 만약 안기부나 국방부로 갔더라면 나는 모가지야! 자네도 마찬가지고!"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

 

그 당시는 월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이라 파병 장병들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를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한달에 3통씩 쓰게 했다.

 

그런데 내가 서울로 교육을 간 사이에 영성이 놈이 나 보라고 장난편지를 써서 내 책상 서랍속에 쑤셔 넣어 놓았는데, 행정계에서 내가 위문편지 책임량(責任量)을 다 채우지 않았다고 독촉하는 바람에 여직원이 서랍을 뒤져 그것을 위문편지로 착각하고 겉봉에다 나의 이름을 써서 행정계에 제출해 버렸던 것이다.

 

그놈의 '욕지거리 편지'는 멀리 월남으로 날아갔고, 아! 글쎄! 비둘기부대의 '박○○'이라는 상병(上兵)이 받아본 모양이다.

 

그 편지는 월남에서 대 히트를 쳤고 전 부대원이 돌려가며 보았다는데 킥킥 웃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위문편지라 하기에는 너무 심한 것 같아 '이런 공무원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 서장님에게 편지 사본과 함께 이런 글을 써 보냈던 것이다.

 

[귀서에 근무하는 박××로부터 동봉한 위문편지를 잘 보았습니다. 아무리 조국에 버림받아 죽으려 월남에 와 있는 목숨이지만 서장님! 이런 자가 공무원 이라는데 저는 분노합니다. 이런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가 국방의무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국방부로 이 내용을 이첩하겠습니다.

 

(후략)]

 

서장실을 나오기가 무섭게 나는 감기몸살로 출근을 하지 못한 채 하숙집 방에서 소낙비 맞은 들쥐처럼 불쌍하게 누워 있는 영성이에게 달려갔다.

 

"야! 너 욕지거리 편지를 쓴적이 있냐?"   

 

"응~! 봤어?" "히 히 히"

 

"키일났다! 임마! 그게 임마! 월남갔다 서장님에게로 왔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녀석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느라 통박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우리 두 넘은 댓병으로 된 45도짜리 안동소주 한병을 사들고 서장님 관사로 가서 넙죽 큰절을 올리면서 용서를 빌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사죄를 드리니 서장님은 "젊은 친구들이 서로 의리가 있어서 좋다"고 하시면서 그 편지 내용이 또 생각이 나셨는지 껄껄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수습대책을 지시하셨다.

 

첫째, 박군 이름으로 부쳐진 편지이니까 내일부터 사과편지를 박군이 써서 반드시 서장 결재를 받을 것.

 

둘째, 월남에서 답장이 올 때까지 매일 쓰도록 할 것.

 

셋째, 월말에는 반드시 '명랑', '아리랑'등 월간잡지를 동봉할 것.

 

그날이후 나는 거의 매일 박 상병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하찮은 9급 말단직원 떠나는데 전 직원이 전송을 해주던 그 때 그 시절의 따뜻한 근무 분위기.
요즘은 안과수술 백번해 보아도 도저히 찾아 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박 상병님! 내용을 보더라도 그건 위문편지가 아니라 친구가 나를 웃기려고 쓴 편지임이 틀림없고 실수로 그리로 간 것임을 알 수가 있지 않으냐. 오해를 풀고 귀국하면 쇠주 한잔 하자]

 

이런 내용의 편지를 정말 신물이 날 정도로 쓰고, 결재받고, 우송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답장은 오지가 않았다.

 

우리는 이번일이 시일이 지나면서 잊혀 졌거나 나의 성의를 수용한 것으로 이해하고 자동적으로 해결됐다고 여기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을 하니 지방청 감찰부서에서 두 사람이 우리 과에 와서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그 '욕설편지' 사본과 우리 두 놈의 필적을 대조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월남에서 그 편지를 국방부로 보냈고, 국방부에서 다시 국세청으로 이첩(移牒)이 돼 조사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통수보 과정에서 그 편지를 읽어본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히쭉히쭉 웃다가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까워서 반드시 공람(供覽)을 돌렸을 것이 분명하고 또 한바탕 소동이 났으리라 상상해 본다.

 

필적대조 결과 영성이가 당첨이 됐다. 그후, 한 녀석은 징계를 받고 전보됐고, 다른 한 녀석은 편지쓰느라 고생했다고 대구시내로 영전을 시켰다.

 

참으로 해괴한 처리다. 웃고 넘길 일을 가지고….

 

'67년에 같이 이불보따리를 들고 안동에 내려왔는데 '68년에 이렇게 헤어지게 되니 기가 막힌다.

 

헤어지는 안동역 플랫폼에는 세무서 전 직원이 전송을 나왔고, 이별의 아쉬움에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특히 여직원들은 좋은 신랑감들이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석달 보름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하찮은 9급 말단직원 떠나는데 전 직원이 전송을 해주던 그 때 그 시절의 따뜻한 근무 분위기.

 

요즘은 안과수술 백번해 봐도 도저히 찾아 볼 수가 없어 안타깝다.

 

대구로 올라와서 지방청과 세무서에 인사를 하니 나의 이름만 듣고도 금방 알아 모시면서 악수를 청한다.

 

아마 다들 그 편지를 읽어본 모양이었다.

 

서장님께 인사를 하는데 "아! 편지 잘 쓰는 친구 아이가!"하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나는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세무공무원이 돼 버렸다.

 

친구 덕분에.

 

그 후, 열받은 영성이는 월남의 '비둘기부대'에 있는 박 상병을 찾아 혼을 내주려고 지원입대를 했고, 신병 훈련을 마치고 월남 파병을 자원하게 된다.

 

헌병으로 파병된 그는 도착 즉시 박 상병을 찾았으나 의병제대해 버린 사실을 확인하고 대신 나보고 혼을 내주라면서 박 상병의 집 주소를 적은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월남에서 수집한 누드사진집도 함께 동봉해 왔다.

 

나는 여러번 서울에 올라와 천호동에 있다는 그 넘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는 교통사정 때문에 서울에 한번 올라가기도 어려웠고 촌놈이 서울주소만 달랑 들고 찾기란 간단하지 않았다.

 

박 상병을 드디어 찾은 것은 몇년뒤인 '73년도 여름이다.

 

그때는 나도 서울로 올라와 청량리세무서에서 근무할 때다.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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