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촌놈의 첫 시련
'71년 초 봄. 서울 발령을 받고 올라오기가 무섭게 나는 출근도 잊은채 다시 녹번동 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호순 조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드디어 찾기는 했으나 얼마전에 홍제동 극장 뒤편으로 이사를 갔다나….
이제 시간이 많기 때문에 천천히 차분하게 찾기로 하자.
발령지인 성북세무서로 출근을 하니 행정계로 배치돼 있었다. 3일이나 무단결근을 했다고 징계를 시킬 작정이다.
서울에 오자마자 콱! 찍혔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떡하기는 뭘 어떻게 해? 내가 잘못한 일인데. 감수할 수밖에 뭔 도리가 있나?
오후에 나는 안동에서 근무할 때 아껴주시며 정이 들었던 서장님이 성동세무서장으로 계셨기 때문에 상경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갔다.
성동세무서는 지금의 동대문 운동장 맞은편에 있었다.
인사를 드리니 마치 군(軍)에서 무사히 제대해 온 친자식을 대하듯이 반가워하셨다. 결근(缺勤)문제도 성북서장님께 직접 전화를 해 주셔서 해결이 됐다.
공무원 생활하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빽(?)을 쓴 것 같다.
"서울에서는 정신 차리고 열심히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용돈도 듬뿍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어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정말로 나는 그 분을 존경한다.
40년전, 60년대에 벌써 나의 고품질 유머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국세청에서 과연 몇분이나 있었겠는가? 그중에 한분이 바로 '윤세극'씨이다.
출근한지 하루가 지났는데 과장님께서 나를 부르더니 "지방청의 지시로 내일, 모레 이틀동안 우리 서에서 '미도파 백화점'을 입회조사하는데 총무과에서 자네가 차출됐으니 시내도 구경할 겸 내일 아침 10시까지 백화점으로 출근하라"고 하셨다.
이튿날 백화점에 늦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세무서와 가까운 곳, 동소문동에 정해 놓은 하숙집을 서둘러 나왔다.
그리로 가려면 우선 서울역으로 가서 다시 갈아타야 한다는 하숙집 할머니의 말을 듣고 시내버스를 타긴 탔는데 서울역을 지나쳤는지 이놈의 버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다시 내려 바꿔타기를 수차례, 겨우 백화점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12시가 넘어버렸다. 먼저 와서 근무하고 있는 두 사람, 어찌 표정이 심상치 않다. 남직원 'L'과 여직원 'K'다.
"촌놈이 처음 서울에 와서 버스 탈 줄을 몰라 헤매다 겨우 찾아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나는 정중히 사과를 했다.
'왜 따뜻한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서울에 와서 이런 설움을 당하나'
'혼자 이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그런데 금테안경 너머로 보이는 살기띤 눈빛하며, 목욕을 자주 한 걸가? 해맑고 반질반질한 얼굴, 번쩍이는 실크 양복하며, 고급스런 넥타이를 매고 있던 L이 버럭 큰소리를 내지르면서 훈계를 해댄다.
"당신! 정신 있소?! 지금이 몇시요?"
목청 찢어지라 고래고함을 지르는 통에 나는 겁도 나고 기가 질려서 숨을 죽인 채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예, 12시 15분입니다. 죄송합니다."
"뭐 이딴 공무원이 다 있어! 나는 늦어서 call-taxi를 불러 타고 왔는데 정신상태가 그래서 어떻게 공무원 생활을 하겠소!"
나는 무지하게 높으신 분에게 된통 걸렸다고 직감을 했다.
그래서 최대한 공손하게 읊조렸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백화점 넓은 현관입구 한쪽 모퉁이에 책상 두개를 가져다 놓고 세 사람이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구경하다가 저녁 무렵에 백화점이 문을 닫으면 하루 판매금액을 확인하는 희안한 입회조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몇시간을 꼼짝달싹도 못한 채 앉아 있는데 L이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다며 백화점 문을 나가다 갑자기 홱 돌아서면서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절대로 자리뜨지 마시오!"
"옛! 잘 다녀오십시오!"
나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는 벌써 저만치 가고 있었다.
'…쓰벌! 간 떨어질 뻔했다.'
나는 얼른 백화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50여미터쯤 저쪽에 가고 있는 L의 뒤통수를 확인하고 나서 여직원 K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저분이 무슨 과장님이십니까?"
"과장은 무슨 놈의 과장이요. '새끼보'인데요."
그 때에는 9급 세무서기보를 제일 말단(末端)이라는 뜻으로 '새끼보'라고 불렀다. K양은 나이도 비슷하고 직급은 오히려 낮은 사람이 자기가 봐도 너무 심한 것 같더라 면서 재산세과에서 잘 나가는 직원이라고 가르쳐줬다.
나는 속으로 'c8 이누무 자슥! 오기만 해 봐라! 9급 주제에 마치 국장님 같은 행세를 하면서 8급에게 까불어?'하고 전의(戰意)를 다지며 L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다.
"야! 일어서! 임마!"
"너 동료가 무슨 뜻인지 알아?"
"그래, 아침에 나는 두시간 늦었어! 그런데 너는 세시간을 자릴 비워?"
나는 아까 당한 것이 너무나 분해서 L의 고급스런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
"너 이 넥타이 좋구나! 이 양복도 비싸겠구나."
"이자식이 뭐 call-taxi를 타고 왔다고?"
"그래, 나는 임마! 돈이 없어서 버스 타느라 늦었다."
"뭐? 이딴 공무원이라고? 야 임마! 정신차려!"
"공무원이기 전에 인간이 먼저 돼! 짜샤! 내 말 알아들었어?!"
"…."
쌓였던 분통이 반쯤은 비워졌지만 그래도 아직 조금 남아있었다.
"임마! 9급도 벼슬이라고 그래?"
"너 같은 인간하고는 잠시도 함께 근무할 수 없어!"
그렇게 마구 쏘아 주고는 백화점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반쯤 얼굴을 들이밀면서 아까 L이 하던 것처럼 홱 돌아서서 눈을 부라리면서 한 말씀을 해줬다.
"너! 자리 뜨지 말고 근무 잘하고 있어!"
밖을 나오니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뭐가 그리 바쁜지 어지럽게 가고 오는데 나는 딱히 갈 데도 없다.
남산(南山)이 바로 앞에 보인다. 털레털레 느릿느릿 힘없는 걸음으로 남산을 오른다.
우울하다. 슬퍼진다. 저기 벤치가 있다.
남대문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으니 저절로 눈물이 핑 돈다.
나는 소리를 내면서 엄청 많이 울어 버렸다.
'왜 따뜻한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서울에 와서 이런 설움을 당하나.'
'혼자 이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시아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넓고 큰 바다에서 파도가 치는 대로 출렁이며 떠밀려 가는 조각배처럼 지금 나의 신세가 바로 그런 것 같다.
'이제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어떤 난관이라도 극복해 나가자.'
밤의 어둠이 가로등불 과 네온 불빛 때문에 퇴색돼 가고 있는 서울의 야경을 남산에서 바라보며 다짐해 본다.
하루종일 한끼도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채우고 몇시간을 걸어서 하숙집에 도착하니 벌써 자정(子正)이 됐다.
'내일은 백화점에 늦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이튿날은 실수없이 정시에 입회 장소에 도착했다.
L이 정중히 사과를 한다.
악수로 화해는 했지만 어째 좀 개운하지는 않았다.
L은 커피와 음료수, 빵, 과일 등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와서 마치 양조장 사장님이 주세검사나온 직원을 대하듯이 아주 비굴한 태도와 지극히 상냥한 웃음을 쏟으면서 먹으라고 한다.
인격의 이중성(二重性)을 바로 앞에서 구경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세상의 일은 참으로 해괴하다.
6개월 뒤 나는 L이 근무하는 부서로 발령이 나서 같이 근무하게 됐는데, ㅋ ㅋ ㅋ 나는 6석인데 그는 8석이다.
그는 지금도 서초동 나의 사무실 가까운 곳에서 세무사를 하고 있다. 오늘 점심은 그와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