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10)[전 세무서장증언]

2006.12.11 09:18:40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13.  포기,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서 성북, 도봉(성북에서 분리됐음)에서 청량리로, 벌써 3개 세무서를 거치는 동안 3년이 훨씬 지나갔다.

 

그동안 휴일이면 어김없이 '시아'를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홍제극장 뒷편에는 어느 집, 어느 골목 구석구석까지 화∼안하다.

 

소식이 끊어진지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희망도 없이 자꾸 세월만 가고 보니 찾고자 하는 의욕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 대신에 독자(獨者)이신 아버님의 결혼 성화는 더욱 강해져만 갔다.

 

'혼자서만 이러고 있는가?'

 

'내가 어리석은 걸까?'

 

'포기해 버릴까?'

 

'죽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 그만 포기하자.'

 

결국 부모님의 독촉과 성화를 못 이기고 그해 연말 나는 대구에 있는 허름한 식장에서 결혼을 했다.

 

결혼식 전날 대구로 내려가면서 처가를 먼저 들렸는데 큰일을 치루는 집이라고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못해 썰렁했다.

 

다른 친척들은 한명도 없이 처가 될 사람, 장모, 처형, 처제 둘, 여자 다섯이 달랑 모여있었다. 그리고 좀 험상 궂게 생긴 사람이 맏동서가 될 사람이라면서 바쁜 척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도 들었지만 내일이 결혼식인데 어쩌겠는가?

 

이미 나는 새로운 사람 앞에서 눈이 멀어 있었고 그들의 단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이제 정신 차리고 모든 미련을 깨끗이 떨쳐버리자.'

 

'이제 직장과 가정에 충실하자!'고 다짐했다.

 

14. 1급 비밀과 낚시사부님

 

'주책바가지'라 소문이 난 Y서장님이 서장실로 올라오라고 직접 전화를 하셨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어느 직원 할 것 없이 서장실로 끌고 들어가신다.

 

그리고는 돈 이천원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지금으로 치면 만원쯤 될까? 물론 되갚아 주지는 않았다.

 

그러한 행동 때문에 어떤 직원들은 화장실을 갈 때도 서장실을 돌아서 가곤했다. '주책바가지'라고 수군수군 거리면서.

 

그러나 나는 참으로 순수하신 분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의도적(意圖的)으로 결재를 지연시키던 그런 분에 비하면 정말로 양질(良質)이셨다.

 

그 분도 특히 나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부르셨습니까?"

 

"응∼ 안져! 오 야∼앙! 커피 한잔 가져 와아∼."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기다렸다.

 

"박군아! 큰일났다!"

 

"…예? 무슨 일이 니까?"

 

"저 가시나가 이렇게 됐다."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나서 다시, 두 손을 아랫배로 가져가서는 불룩하게 원을 그리고 임신한 시늉을 하며 가만가만 말씀하신다.

 

"어떤 놈이 그랬는데요?"

 

"이 사람아! 어떤 놈이 뭐야! 그 놈이 바로 나다."

 

"자네가 좀 수고해 줘! 쥐도 새도 모르게!"

 

"…"

 

그 길로 나는 '쥐도 새도' 보다 몇 단계 더 높은 '개도 독수리도' 모르게 큰일을 해결했다.

 

잘했지요? 주책! 주책!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전화를 하셨다.

 

점심을 사줄 터이니 같이 가자신다. 식사를 마치고 낚시가게에 가더니 이것저것 낚시용품을 고르시고는 나보고 돈을 지불하란다.

 

'오늘 된통 걸렸구나.'

 

낚시가방을 트렁크에 넣고는 우리 집으로 가자신다.

 

그 당시에 우리 집은 미아리 '영훈 학교' 뒷편 판자촌 철탑 바로 밑에 있었다.

 

갑작스런 서장님의 방문에 크게 당황했지만 마치 본인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대하신다.

 

커피 한잔하고 난 서장님은 "내일 토요일에 남편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낚시가방을 내려놓고 사무실로 가셨다.

 

토요일 오후 한시, 근무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던 서장님의 친구분과 함께 간 곳이 바로 용인에 있는 '송전저수지'였다.

 

낚시꾼들은 물가에만 가면 마음이 급해진다.

 

마치 붕어와 몇시에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해둔 것처럼. 우리는 서둘러 저수지 가운데에 설치해 놓은 한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도록 만든 1인용 좌대 세개에 각각 올라앉아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낚싯대, 받침대하며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는데 어떻게 사용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10여m 떨어져 있는 두 분은 벌써 한 마리씩 잡았다고 떠들썩, 희희낙락이다.

 

"박군아! 자네가 처음 여기에 와서 잡은 월척붕어 있잖아, 그게 사실은 그때 같이 왔던 김 사장이 잡은걸 박 군 몰래 자네 낚싯대에 매달아 놓았던 거야! 키 키 킥!"

 

나는 '왕초보'를 데리고 왔으면 책임을 져야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낚시에 열중하는 두 분을 속으로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쓰면서 고함을 쳤다.

 

"낚시터에서는 좀 조용히 하입시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서장님이 보트를 불러 타고 내가 있는 좌대로 와서 낚싯대를 펴주면서 교육을 하는데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해 봐도 내게는 통 입질이 없었다.

 

줄이 엉키고 바늘에 걸려 한참 고생하다 결국 다시 서장님을 부른다. ㅎㅎㅎ 그 사건 이후로 내게 꼼작도 못하셨다.

 

상상을 해보시라!

 

첫 낚시에 한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좌대에 꼼짝도 못하고 앉아 밤을 새운다고 생각해 보시라.

 

진짜로 춥고 배가 고팠다.

 

새벽 먼동이 트면서 나는 물 밖으로 나왔다.

 

'정말! 낚시는 죽어도 안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얼굴 씻고, 볼일 보고, 밥 먹고 나니 이제 살 것 같다.

 

두 분은 빨리 들어가잔다. 이때가 '입질 타임'이라나.

 

나는 단호히 거절하고 두 분이 철수할 때까지 차에서 기다리며 잠을 자버렸다.

 

"박군아! 빨리 들어와서 가방 챙겨 나가자!"

 

보트를 타고 내 자리로 가서 보니 낚시찌가 보이지 않는다.

 

황급히 대를 들어 올리다가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하였다.

 

뭔가 걸려도 된통 걸렸다. 대물(大物)임이 틀림없다.

 

흐 흐 내가 잡은 고기는 토실토실하고 예쁘게 생긴 32.4㎝나 되는 월척(越尺)붕어였다.

 

두근두근 가슴은 뛰고, 어젯밤 고생은 어디로 간 건지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서울로 올라와서 헤어질 때까지 두 분의 축하는 계속됐으며 못내 부러워하셨다. 평생 월척 한번 못한 낚시꾼이 대부분이라면서.

 

그날 나는 좀 심하게 우쭐댔던 것 같다.

 

이렇게 미치기 시작한 나의 낚시여정은 오늘까지도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주말이면 가방매고 집을 나서는 나는 사실 그때부터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돼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낚시에 미치게 한 책임을 주책님에게 떠다 넘기면서….

 

바로 어제도, 대흥낚시 김·최·이 회장과 땅끝마을 전라남도 해남에 있는 '사초지'에 2박3일로 다녀오는 길이다.

 

비바람 때문에 허탕만 치고.

 

낚시얘기는 다음에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낚시를 모르면 인생도 모른다.'

 

'낚시를 모르는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이건 내가 지은 명언이다. 삶을 사는데 참고하세요.

 

그날 이후, 나는 토요일만 되면 낚시 가자고 서장님을 졸라댔다.

 

이렇게 낚시광으로 타락해 버린 어느 날 낚시터에서 나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박군아! 자네가 처음 여기에 와서 잡은 월척붕어 있잖아, 그게 사실은 그때 같이 왔던 김사장이 잡은 걸 박군 몰래 자네 낚싯대에 매달아 놓았던 거야! 키 키 킥!"

 

'…? …? 이건 또 뭔 소리람?!'

 

'헉! 그참!'

 

나는 한참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그런 건 죽을 때까지 비밀로 지켜주면 안되남?'

 

그래서 나도 '1급 비밀'을 폭로해 버린 주된 이유다.

 

하여튼, 낚시는 한쪽 끝에 작은 벌레가 반대편 끝에는 큰 벌레가 서로 매달려 대화를 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알게 될 때까지 3·40년이 걸렸다. 결국 인간도 벌레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국세공무원들이여!

 

스트레스를 받으면 딴 데 가지 말고 저와 함께 낚시나 하러 갑시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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