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천정부청사 주변은 예산을 확보하려는 각 정부부처 관계자들로 무척 붐빈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되풀이되는 현상이지만,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앞선다.
아직 국회의 새해 예산안 심의가 뚜껑도 못 열고 겉돌고 있는데, 달라고 아우성이니 마치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돼 버렸다. 예산안 정시(正時)통과는 정부나 국회 모두가 아예 바라지도 않는 듯한 분위기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새해 예산안이 정시에 국회를 통과한 적은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 딱 한번뿐이다.
현행 헌법은 '국회는 회계년도 개시 30일전까지 새해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대로라면 지난 2일까지 예산안이 통과됐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 기초심의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한마디로 국회가 앞장서서 헌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정상처리가 안될 경우 예산의 방만운영을 유인하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 규모는 일반회계 158조원을 포함 총 238조원이다. 열린우리당은 정부안을 존중한다는 입장이고, 한나라당은 12조원이상을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여·야가 뭘 알고 방침을 정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벌써 찬성과 반대를 설정한 그 '신통력'이 놀랍다. 적어도 이러이러한 사업에 이만큼 들어간다는 정도의 기초설명이라도 듣고 찬·반 의견이라는 게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 예산안이 잘못 짜이면 결국은 국민만 힘들게 된다.
이번에도 새해 예산안은 여·야간 정치쟁점에 볼모역할을 하다가 회기말에 대충 대충 넘어갈 게 불을 보듯 뻔해 보이는데, 예산안 정치줄다리기는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