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16)

2007.01.02 10:52:26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23.  오 병장님

 

세상에 살다가 나는 '오병완'씨처럼 순진하고 착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77년도에 그는 수표동 종이골목 한 모퉁이에서 달랑 재단기 한대를  놓고 도매상들의 주문에 따라 종이를 재단해 주고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한달 수입이라 해봤자 잘될 때에는 한 30만원, 안될 때는 20만원이 고작이다.

 

세금낼 것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막무가내다. "백성이 세금 안 내면 나라는 어떻게 되요?"하면서 일반 과세자로 등록을 해버린다.

 

세금계산서받기를 기피하는 종이 도매상들에게 무조건 발행해 안겨버린다. '저 놈한테 가면 무조건 계산서를 끊는다'는 소문이 나니 그를 기피하게 돼 보잘 것 없는 수입인데 그나마 더 엉망이다.   몇만원 나오는 부가세 못 내어 체납 건수만 나에게 잔뜩 올려놓는다. 그러나 부가세 정착에 일조한 공신임에 틀림없다.

 

하여튼 그를 만날 때마다 규모가 엄청 큰 도매상을 가리키면서 요즘 사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느니 불쌍해서 좀 도와줘야 한다고 하는 등 가당찮은 말을 노래 부르듯이 하고 있다. 오히려 자기가 더 불쌍한데도.

 

사람이 그렇다 보니 그 일대에서는 그의 군대 계급장 그대로 '오 병장'이란 애칭을 부르며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성실하면 결국 성공하게 된다.

 

몇년뒤에 그 오 병장도 종업원을 수십명이나 거느린 '○○지업주식회사' 라는 종이 도매상의 어엿한 대표이사가 돼 있었는데 세무조사나 세금문제만 생기면 반드시 나에게 연락이 왔다.

 

그런데 너무 솔직한 그의 태도 때문에 항상 문제가 생긴다.

 

세무조사 나온 국세청 직원과 오 사장과의 대화 내용을 엿들어 보면 대충 이렇다.

 

조사자: "오 사장님, 이것 말고 비밀장부 없어요?"
오: "장사하는 놈이 비밀장부가 왜 없겠어요?"
조사자:  "… …? 그럼 가져와 보시오."
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조사자:  "… …??"
오: "세권인데 두권밖에 못 찾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사자: "… …???"
오: "한권은 집에 놨어요. 내일 갖고 올께요."
조사자: "… …????"

 

조사자: "별도창고 없어요?"
오: "있지요! 계산서 없이 산 덤핑 물건은 거기다 있어요."
조사자: "… …?"
오: "가보시죠. 김 기사! 차 대기시켜!"

 

오후에까지 오 병장의 진실성(眞實性)은 계속됐다.

 

조사자: "별도창고 없어요?"
오: "있지요! 계산서 없이 산 덤핑 물건은 거기다 있어요."
조사자: "… …?"
오: "가보시죠. 김 기사! 차 대기시켜!"
조사자: "… …??  됐습니다.  조사고 뭐고 그만 갈랍니다."
오: "다른 집에는 며칠을 하는데 저희는 왜 금방 가요?"
조사자: "… …???"

 

이게 바로 오 병장이다.  못 말린다. 잘못하면 사람 차별한다고 조사자가 혼쭐난다.

 

그리고 함부로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조사자 스스로 깨닫게 된다.  막상 세무조사나가서 오 병장 같은 사람 만나면 정말로 골치 아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본인이 직접 찾아온 비밀장부를 갖고 뭘 어떻게 할 겁니까?  오 병장 같은 납세자만 있으면 '장부 영치'는 절대로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얼마전 그렇게 착하고 순한 오 병장 집에 강도 두놈이 잘못 들어왔다.  두 내외를 이불속에 덮어 가두고는 돈을 찾았으나 한푼도 건지지 못하고 그냥 가려고 하는 강도를 불러 새웠다.

 

다음은 오 병장과 강도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녹취록'이다.

 

오: "잠깐! 가지 마세요. 집에 돈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강도A: "그럼 돈이 어디에 있냐?"
오: "ㅎㅎㅎ 은행에 있지 어디에 있겠어요."
강도B: "이 새끼! 가져와."
오: "오늘 저희 집에 주무시면 내일 은행에 가서 찾아 드리겠습니다."
강도A·B:  "… …?"
오: "여보, 뭐해! 얼른 나와 저녁밥 빨리 해!"
강도A·B: "… …??"
오: "안녕히 주무세요!"
강도A·B: "… …???"

 

이튿날, 강도님에게 예금을 찾아 드렸더니 얼굴 알아본다고 둘 내외에게 잔인하게 칼질을 해대고 가버렸다. 어제 저녁 갈려고 할 때 그냥 놔뒀으면 괜찮았을 것을.

 

착하게 살아서인가?

 

두 내외 모두 칼자국이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빗나갔다. 두 분은 이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요즘같은 세상에 아직도 그런 희귀한 분이 성북구 장위동에 살고 있다.

 

나는 그런 오 병장을 알고있는 것이 행복하다.

 

오 병장 내외를 구경하고 싶은 분들은 제게 연락주십시오. 무료로 단체관람시켜 드리겠습니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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