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18)

2007.01.16 09:37:52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25.  사비직원

 

우리라고 별 방법이 있는가? 큰 죄를 저질러 놓았는데!
네 놈은 죽을힘을 다해서 빌고 또 빌었다.

 

'77년도 당시만 해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부가계의 고참직원들 대부분은 내무업무를 자기가 직접 하지 않고 대신해주는 아가씨를 직원 개인이 직접 채용하고 월급도 각자가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통상 '사비직원(私費職員)'이라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사비직원의 급여를 준다는 것은 어림도 없음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 돈은 결국 납세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다.

 

감찰에서는 이런 사례를 근절시키려 부단히도 노력을 하지만 대부분 업무를 수동(手動)으로 하기 때문에 글씨가 느리거나 주판이나 숫자에 능하지 않은 직원들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해 감찰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복잡한 내무업무란 예를 들면 세대장 정리, 신고상황 집계 분석, 세금계산서 일련번호 부여 및 편철, 전산실 송부, 고지서 작성, 우편송달 등의 업무를 그들에게 대신 시켜 놓고 그 직원은 외부출장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이해가 될 만도 하지만 엄청난 부조리인 것은 사실이다.

 

부가가치세 시행 초기에는 워낙 일이 바빠서 친척이나 친구들을 일시적으로 동원해 일을 처리했는데 그것이 일반화돼 버렸던 것이다. 사비 직원들은 자기를 채용한 주인이 출장을 나가면 그 직원의 책상에 앉아 내무를 봤다.

 

과·계장님은 일처리의 원활을 위해 못 본채 그냥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았다.

 

감찰에서는 불시에 점검을 나와 적발이 되면 관련 직원을 엄하게 문책을 했다. 그래서 그들과 숨 막히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사비직원없이 혼자서 모든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고 열심히 한다 해도 사비직원과 둘이서 하는 그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 한사람 때문에 과 전체의 업무가 늦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일이 빠르고 정확하다 하여 계의 내무업무를 맡기는 바람에 나도 사비직원을 둘 수밖에 없었다.

 

1·2·3계 차석과 넷이서 감찰의 눈을 피할 수 있고, 사비직원이 좀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통박을 굴려보았다.

 

결국 우리는 세무서 건물과 붙어있는 식품가게 2층에 작은 사무실을 구해 말하자면 사비직원 전용사무실을 만들었다. 간도 크게도.

 

이제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서 일하다가 감찰직원에게 적발되는 일이 없이 안심하고 보조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네 놈이 출장을 나간 사이에 본청 감찰 Y님에게 제대로 걸렸다는 비상연락이 왔다.

 

넷이서 급히 비밀 아지트로 가 보니 사비 아가씨들이 벌써 확인서를 써놓고 눈물을 글썽이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우리라고 별 방법이 있는가? 큰 죄를 저질러 놓았는데!

 

네 놈은 죽을 힘을 다해서 빌고 또 빌었다.

 

그 날로 아지트를 폐쇄하기로 하고 용서를 받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호랑이에게 불 당겨드리다 큰 코 다칠 뻔하였다. 경상도 말로 시껍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네 놈은 비로소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례는 다른 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의 부조리했던 세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임이 틀림없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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