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21)

2007.01.25 08:34:31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며칠후, 서장실에 좀 올라오라 하셨다.

 

서장님은 다른 과와 상의해 봐도 모두 받지 않으려 하니 나 보고 그냥 데리고 있을 것을 종용하셨다.

 

"그러면 서장님 이렇게 해주십시오."

 

"응 어떻게?"

 

"저와 맞바꿔 주십시오."

 

흠칫 놀라신다.

 

"인사는 장난이 아니야! 박 계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양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돼!"

 

나는 며칠을 서장님에게 졸라댔다.

 

"후회하지 않겠나?"

 

"아닙니다. 결정을 잘하신 겁니다."

 

마침내 서장님께서 결심을 하셨다.

 

"그럼 S를 불러봐!"

 

S차석이 업무노트를 들고 허리를 잔뜩 굽힌 채 들어와서 앉는다.

 

그리고는 지시사항을 받아적으려는 포즈를 하면서 서장님을 바라본다.

 

"S씨! 여기 박 계장이 자네와 자리를 바꿨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을 듣던 S씨는 대뜸 일어서더니 "서장님 감사합니다"라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S씨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계장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렇게 자리를 바꾼 것에 대해 오해를 하지 마십시오."

 

"제가 차석으로 가서 구역을 담당해 나쁜 짓을 하려고 그런 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의리(義理)있는 놈 하나 잘 만났다고 생각하십시오"

 

S씨는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나에게 여러번 되풀이 했다.

 

나는 S씨와 서장님 앞에서 딱 두가지를 다짐받았다.

 

첫째는, 근무평정(勤務評定)에서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남들이 보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인사기록카드에 주무 발령 내용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했다.

 

특히 S계장님은 근평(勤評)에서 반드시 양보하겠다고 여러번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날 자리를 바꿔 앉았다.

 

계장과 차석이 금새 뒤바뀐 상황을 보고 제일 황당했던 사람은 바로 우리 계 직원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계 직원들은 나를 계속 "계장님"으로 불렀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국세청 직원들은 '역시 박○○이구나'하고 인정을 하게 됐고 서장님은 '이놈 쓸만한 녀석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답니다.

 

30. 촛대 뼈 한번 까여 보셨나요?

 

남대문에 온지 약 6개월쯤 됐다.

 

계장님은 직원들에게 호통을 칠 경우에는 미리 나를 보고 잠깐 차 한잔하고 오라고 하는 등 그래도 많이 배려를 해줬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소문대로 정화측면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직원들은 누구나 할것 없이 시범 옳게 하자고 다짐하고 또 그렇게 실천을 하고 있었다.

 

잡음이 생길까 염려돼 외부출장을 절대 금지시켰으니 직원들은 줄곳 사무실에만 처박혀 있었다.

 

"우리서는 조사 안합니다. 출장도 없습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세무서 정문을 막 들어서려는데 서울시경에서 나왔다면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다짜고짜 촛대 뼈를 먼저 깠다.

 

"만약 세무서에서 나왔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가짜이니 신고해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유인물과 간담회를 통해 모든 납세자에게 알렸으니 그 분위기는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S계장은 신이 난다.

 

주로 대납세자(大納稅者)로 구성된 '세정자문위원회'의 관리업무가 2계의 소관임을 기화로 뻔질나게 모이게 하고 있었다.

 

직원들 모두 외부출장이나 외부접촉을 차단해 놓고….

 

그와 또다른 한사람, 딱 두사람만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전(全)직원 모두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말이 튀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해야겠다.

 

고인(故人)이 된 사람을 두고 험한 말을 하는 것은 잘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잃고, 얻어터지고, 당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출근길에 세무서 정문을 막 들어서려는데 서울시경에서 나왔다면서 나를 데리고 가더니 다짜고짜 촛대 뼈를 먼저 깠다.

 

"뭣 때문에 이러십니까?"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 대신 돌아오는 것은 매질이다.

 

나는 또 때리려고 손을 올리고 있는 그놈의 얼굴에 내가 먼저 한방 먹여버렸다.

 

"이유나 알고 맞아야 할 게 아니냐!"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나는 꿀릴 것이 전혀 없었다.

 

남대문에 와서 6개월이 넘었지만 정화시범 직원이라는 자세를 간직하며 근무해 왔었고, 또한 그때 시경 ○○과장이 외삼촌이어서 든든하기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잠시 외삼촌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조카 '영식이'와 몰래 극장 갔다가 들켜 권총을 겨누며 죽여버린다고 하시던 엄한 분이다.

 

지금은 퇴직하셔서 노후를 건강하게 보내시고 계신다.

 

취조실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는지 ○○과장님이 들어오시다가 외조카가 거기 있는 걸 보셨다.

 

"김 형사! 뭐야?"

 

"옛! 봉래동 ○○농기구상에서 ○○만원 수뢰사건입니다."

 

"철저히 조사해!"하시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기가 막히신 모양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S의 짓이구나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납세자를 직접 접촉하는 직원은 단 한사람뿐이었으니까.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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