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빽 한번 써봐" (27)

2007.02.15 15:35:07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필기시험에 대비해 문제집은 출퇴근 버스에서 읽었다.

 

일주일이 지나 시험 치는 날이다.

 

필기시험은 전체 1등이라면서 다른 사람의 답안지에 입회인으로 서명을 하란다. 잠시 후에 치룬 실기시험도 거뜬히 합격을 해버렸다.

 

'운전면허 선배'라고 원장님께 큰소리 한번 치게 생겼다.

 

이튿날 퇴근 무렵이다, 나는 현관에 세워둔 원장님 차에 올라 '양기사님'에게 계기판을 보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그때 원장님이 퇴근하려 나오시다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면허 땄어? 운전하려고?"하고 물으셨다.

 

나는 엉겁결로 "네!"하고 대답했다.

 

원장님은 경의(敬意)와 시기(猜忌)가 어린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씀하신다. "안 돼! 이 사람아!생명에는 스페어가 없어!"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미안하셨던지 원장님 자택이 있는 '사당동'까지만 해보라고 하신다.

 

그러고는 뒷좌석에서 이내 코를 골며 자고 계셨다.

 

아마도 나의 운전실력이 괜찮다고 판단하신 모양이었다.아니면 눈을 뜨고 있으면 불안하니까 애써 잠든 척 하시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양 기사님이 옆에 앉아있지만 그날 나는 벌벌 떨면서 수원교육원을 출발해 사당동까지 주행연습 한번 하지 않은 주제에 꽤 먼 길을 몰고 왔으며 약속대로 그날 저녁도 사주셨다.

 

사모님도 식당으로 오셔서 축하를 해주셨다.

 

지금 원장님은 몇해전에 벌써 명을 달리하셨지만 사실 나는 그 분보다 사모님을 더 존경했다.

 

효부상(孝婦賞)까지 받으신 사모님의 언행은 진실과 성실 그 자체였다. 내가 직접 목격한 사모님은 바로 이런 분이시다.

 

90이 넘으신 원장님의 어머님, 사모님에게는 시어머님이다.극심한 치매와 병환으로 몇년을 침대에서 누워계셨는데 음식은 미음을 먹여드렸고, 대소변은 그 자리에서 받아내셨다.

 

한번은 미음을 떠먹이시다가 잘못해 시어머니의 입가로 흘러내린 미음을 사모님이 얼른 손가락으로 핥아서 자기 입에 넣는 장면을 보고 나는 정말로 감동을 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본 그집 아들도 그렇게 했다.

 

세상에, 그런 분이 또 있을까?

 

하여튼, 면허증을 찾기도 전에 운전대를 맡긴 원장님의 배포는 알아줘야 한다.

 

운전얘기가 나온 김에 면허증을 찾은 날의 쓰라린 추억을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없다. 내 평생 죽을 뻔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영덕대게를 파는 친구 녀석의 차를 타고 한남동에 있는 면허시험장에 가서 면허증을 찾았다.

 

나는 얼른 운전석에 앉아 친구가 타기도 전에 문을 잠그고 혼자서 출발해 버렸다.아무 간섭을 받지 않고 차분하게 도로주행 연습을 해보기 위해서다.

 

춘천(春川) 가기전 '의암댐'이 있다.

 

한남동에서 출발해 회전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앞만 바라보고 직진(直進)만 했는데 거기까지 가버린 것이다. 댐 수문 앞에 서 있는 교통순경에게 부탁을 했다.

 

"아저씨! 차를 못 돌려 직진만 하다가 서울서 여기까지 왔는데 차 좀 돌리게 해주세요."

 

다짜고짜로 면허증 좀 보잔다.

 

금방 찾아 따끈따끈한 나의 면허증을 보더니 교통아저씨는 "이 친구 이거 정신 나갔나!"하고는 지나가는 모든 차를 정지시키고 나서 얼른 돌려 조심해서 가라 했다.

 

"와장창!찌이익!" 하고 뭔가 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친절한 교통아저씨다.

 

돌아오는 길은 식은 죽 먹기다. 앞에 가던 버스가 트럭을 추월한다.

 

나도 바짝 붙어 추월을 하는데 미처 우리 차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맞은편에서 버스가 다가왔다.

 

"와장창!찌이익!"하고 뭔가 심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살며시 떠보니 운전석 쪽은 마주 오는 버스와 살짝 부딪쳐서 외부 미러가 부서진 채로 덜렁거리고 있었고, 오른편은 트럭과는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있었다.

 

버스기사가 내려왔다. 멱살을 잡으면서 욕을 해댄다.

 

자기 차가 별로 상한 데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가버린다.

 

이윽고 두 눈을 부라리면서 대기하고 있던 짐차 기사가 내려온다.

 

이 놈한테 또 맞으면 나는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잘못했다고 빌면서 아까 버스기사에게 귀싸대기를 세게 맞았으니 좀 봐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 기사는 때리지는 않았는데 그 대신 천하에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아주 심하게 하고 나서 가버린다.

 

그 참에 밀려 기다리던 이놈들은 개욕을, 저놈들은 쌍욕을 해대면서 지나갔다.

 

나는 차를 길 옆으로 바짝 붙여 놓고 언덕에 올라 그때까지도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온통 땀에 젖어있었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서울로 가야 되는데 운전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지나가는 몇 사람에게 부탁을 해봤으나 시간이 없단다.

 

서너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팔당댐' 부근까지 왔는데 비는 오고 날은 어두워 왔다.

 

면허증을 찾아 하루만에 큰일날 뻔한 사고도 냈고, 우중운전과 야간운전 모두 마스터한 셈이다.

 

친구 가게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다. 아침 열시에 나간 놈이 이제 돌아왔으니 걱정 무지하게 했단다.

 

내가 봐도 나는 참 황당한 인간이다.무모(無謀)하기도 하고….

 

낮에 맞은 귀싸대기에 버스기사님의 손 자욱이 며칠동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화끈거렸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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