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개발년대의 국가발전모형을 정리하고,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경제·사회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광범위한 개혁에 착수하고 이를 제대로 정착시켜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치·경제·사회구조 선진화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중대한 변화가 시작됐으나, 새로운 대내외 도전요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전환기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제적·물질적인 욕구 충족만으로는 부족한 성숙기 발전단계에 도달했다. 성장, 고용, 생산성, 분배 등 경제적 문제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역할분담 및 보상, 성취감 등의 비경제적 이슈에 대한 대응도 급박하게 됐다. 이와 함께 가치관이나 경제·사회체제에 관한 이념적 문제 또한 급격히 대두되고 있으며, 국민의 행복감, 삶의 질과 이념적 정체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단계에 와있다.
'95년 민선단체장의 등장은 우리나라 지방정치와 행정의 일대 전환점이자 패러다임의 이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민치 패러다임 하에서는 주민에의 대응성(responsiveness)이 높아지고 서비스 행정이 중심이 된다. 지방자치 부활 13년째를 맞이한 2007년 현 시점에서 지방자치와 분권에 관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그간의 지방자치 성과와 경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과연 이런 평가는 정당한 평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들은 어떤 전제 위에서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는가? 그들이 준거하고 있는 전제는 논리적으로나 역사적 경험에 비춰 과연 옳은가?
둘째, 그간의 지방자치와 분권이 정치사회의 민주화와 행정의 효율화에 기여한 바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가 강한 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봐야 하는가? 흔히 얘기되듯이 지역 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하고 지방자치단체간의 경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다는 비판이 정당하다면 그런 문제를 낳고 있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와 분권시스템의 특징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가?
셋째, 과연 자주 거론되는 민주성과 효율성의 제고만이 지방자치와 분권이 추구하는 목표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긴 역사를 통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해 왔고, 21세기의 급박한 변화와 불확실성 속에서 새롭게 그리고 매우 어렵게 대두하고 있는 대내외적 도전과 과제를 다뤄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 지방자치와 분권의 강화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운영시스템 선진화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차원에서 지방자치와 분권의 의의를 새롭게 인식하고 다시 정립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핵심에는 지방의 균형적인 사회·경제적 발전과 재정분권이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재정분권은 중앙과 지방간 기능과 사무를 분산하고, 이에 상응하는 재원확보와 집행을 통해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공공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보다 충실한 시장의 원리에 따른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기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책임성이 미흡한 가운데 지방행정 수요가 급격히 팽창할 경우 지방재정 규율의 이완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건전한 지방재정의 분권은 효율성과 책임성이 균형적으로 확대돼 가는 과정을 통해 달성이 가능하다. 자율성의 신장은 책임성의 확보와 함께 추진돼야 할 과제이다. 본격적인 분권화의 추진으로 예상되는 책임성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지방의회제도의 역량 강화(empowerment)를 위한 각종 제도의 개선, 디지털예산회계제도의 정착을 통한 재정투명성의 강화, 주민참여기회의 확대로 문제의 완화 또는 방지가 이뤄져야 한다.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 평준화를 탈피하고 경쟁과 다양성에 기반한 선분권 후보완의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