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파리를 알고자 한다면 세느강의 유람선을 타는 것도 좋지만 강변을 천천히 걸어 보면 파리의 낭만을 더욱 느낄 수 있다.
'시테 섬' 과 '생루이 섬' 사이로 조금은 혼탁한 세느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는데 섬 사이 사이를 연결하는 32개의 다리가 각각 독특한 모형과 조각으로 치장돼 저마다 멋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라보, 그르넬, 빌아게임, 콩크리트, 마리, 프르넬…. 다리, 다리. 다리 아래에서 처다 보면 천정에도 '쥐느비에브'상, 비둘기상 등 등.
무수한 조각과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는데 이렇게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한 신경을 써서 이야기꺼리를 제공하고 역사성을 부여하고 있는지 참으로 부러웠다.
한편 영국의 '로이드보험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넓은 사무실 한 모퉁이에 작은 동종(銅鐘)이 걸려 있었다.
"저 종은 왜 달아놓았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대한 안내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이 종은 200년전 우리 보험회사 창립일에 달았는데, 우리 회사에서 제일 기쁜 때나 제일 슬픈 때에 울립니다."
"200년동안 지금까지 딱 세번 울렸습니다."
"첫번째는 회사 창립일에, 두번째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씨스'로부터 50만톤급 선박 20척을 한꺼번에 보험에 가입시키는 경사가 나서, 세번째는 그 배가 한꺼번에 여러 척이 침몰되는 바람에 보험료가 엄청 나가 슬퍼서 울렸습니다."
"Korea에서 21명이 방문했으니 지금 네번째로 울리시오"라는 나의 말에 한바탕 웃었다. …(후략)
(15)벨사이유 궁전(Palais de versailles)
아침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우리는 관람에 하루가 꼬박 걸린다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가기 위해 '앙발리드'역에서 '베르사유'로 가는 기차를 탔다. 30여분을 달려왔을까?
마로니에 가로수 사이로 화려한 황금색 궁전의 정문이 보인다.
1919년6월26일, 1차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 측과 패전국 독일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유서 깊은 '거울의 방'이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왼편으로는 전쟁박물관이, 우측으로는 로얄오페라 건물이 모두 40여개의 방으로 구성돼 규모의 거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중략) 루이14세가 거처한 침실과 19명의 왕자와 공주를 생산했다는 여왕의 침실은 온통 황금색으로 도배를 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데 거기서 어떻게 잠이 오는지, 나는 꿈자리가 사나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향락에 아무리 젖어도 죽음은 어쩔 수 없는가? 그도 77세를 일기로 1715년에 잦은 전쟁과 종교탄압 그리고 사치와 향락으로 인한 재정이 엉망인 때 이 세상을 떠났다.
…(중략) 밖을 나오니 루이14세 때에 만들었다는 300㏊ 규모의 거대한 정원이 나타난다. 사방으로 연결된 운하가 있는가 하면, 마치 자수로 편직을 한 것처럼 전시를 해놓은 화단은 화려한 대형 카페트 그대로였다.
…(중략) 다음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비너스'를 보고 '모나리자'를 만났으며, 밀레가 그린 만종을 보고 나서 에펠탑에 올랐다.
그리고 '퐁피두광장' 에서의 자유 분망한 집시들과 아마추어 가수들이 펼치는 무언극과 노래와 춤.
그렇게 통곡을 할 정도로 친해진 걸까? 리셉션에서 입은 한복은 또 뭐람? 참으로 나를 감동케 한다.
진짜로 프랑스다운 맛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파리에 가신다면 오후 세시쯤 반드시 퐁피두광장을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16)영국친구 ANDY와 그의 부인 KAYOKO
오늘은 교육원인 RIPA측에서 우리 교육생을 위한 Reception이 있는 날이다. 모두들 정장을 하고 숙소를 나선다.
뷔페식으로 음식과 양주를 가득 준비하고 RIPA의 전 직원이 모여서 우리를 환영을 해줬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자마이카' 출신인 예쁘장한 RIPA 여직원이 나를 찾는 손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준다.
밖을 나가 보니 영국친구 Andy Johnson과 그의 부인인 일본 출신 'Kayoko'가 함박 웃으며 서 있었다.
Kayoko는 어디서 구했는지 한복까지 차려입었다.
RIPA측에서 영국에 친구가 있으면 초청해도 좋다고 하여 둘 내외를 초청했는데 약속을 지켜 내 체면을 살려주었다.
말끝마다 "No problum!", "문제없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는 '엔디'와 생글생글 잘 웃는 그의 부인 '가요꼬'를 만난 것은 옥스퍼드 거리에 있는 한국식당 '아리랑' 에서다.
육개장을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맛이 어떠냐고 묻기에 정말 환상적이라고 했더니 당장 주문을 하고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잘도 먹는다.
영국으로 유학온 일본 여자 '가요꼬'와 눈이 맞아 작년 이맘때쯤 결혼했다는 '엔디'는 가요꼬가 임신 4개월째이며 서비스 만점이라고 만날 때마다 마누라 자랑이 대단하였다.
그 녀석! 마누라 자랑하면 팔불출로 취급받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190㎝나 되는 꺽다리가 150㎝도 안되는 부인을 마치 인형 다루듯 귀여워 죽겠단다. 거기서 만나 친해졌는데 영국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도 얻어먹고 아리랑식당에서 같이 식사도 자주 했다.
그가 다니는 오디오 회사에 나를 초청해 구경을 시켜줬다.
우리가 영국을 떠나는 날에는 숙소에까지 전송을 나와서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가요꼬'는 '엔디'가 질투를 낼 정도로 엉엉 울었다.
나는 버스에서 다시 내려 '엔디'와 악수하고 '가요꼬'를 두 팔로 안고는 등을 두드려 줬다.
우리 일행들은 "박 형은 직업을 잘못 택한 것 같다"고 하며 부러움에 찬 눈으로 놀려대었다.
일본 사람의 본성은 여기서도 잘 나타나는 것 같다.
그렇게 통곡을 할 정도로 친해진 걸까? 리셉션에서 입은 한복은 또 뭐람? 참으로 나를 감동케 한다.
아무리 미워하려 해도 밉지 않는 그들의 행동, 우리가 배울 점이 아닐까? 사실, 세계의 모든 나라는 일본상품 홍수로 나라마다 규제를 한다고 하지만 모두들, 일본은 밉지만 일본사람은 밉지 않다고 한다.
그게 다 그네들의 '친절성'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정말 겁나는 백성들이다.
우리 국세청도 몇해전부터 납세자를 내 가족 대하듯 친절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어디 그게 교육을 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친절은 자기 교양의 발로요, 내면에 있는 자기의 참모습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과정이며, 또한 그것은 태어난 가문과 뿌리의 수준이기 때문에 절대로 교육한다고 누가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냥 저절로 몸에 배어 있어야 될 일이다.
불친절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을 솎아내서 내게 데려와 보셔.
그냥 콱!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