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남산 제일봉에 올라-(下)

2005.06.06 00:00:00

최상근(대구청)


가벼운 질책을 하면서 일행의 선두와 꼴찌를 오가며 어지럽도록 현란한 풍광을 감상하느라 분주했다. 사소한 이기심의 이러저러한 얽힘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일까. 산천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느끼는 후회같은 것. 자연이 만든 자연다운 모습에 아무도 함부로 이름을 붙여서는 안된다. 장관을 이룬 이 느낌이 천만가지로 다양하거늘 구태여 이름을 붙여버린다면 이미 그것은 더 이상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출발할 때의 우울한 기분은 흔적도 없어졌다. 드디어 남산 제1봉에 올랐다. 옛적에 매화산의 산세(山勢)가 불기운이 드셌단다. 그래서 해인사에서는 매년 단오날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여기 이 남산 제1봉에 소금을 묻어뒀다고 했다. 그 이후로 한번도 불이 나지 않았다고 하는 설화가 어린 이 곳. 여기 어디쯤에 소금이 묻혀 있을까 눈대중을 해보지만 어림없다. 해인사 전설과 얽혀버린 남산 제1봉이야말로 속세인이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될 하늘나라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저렇게 바위들이 둘러싸고 돌아앉아 있으며 하늘은 또 무슨 일로 저렇게 휘늘어 감긴 비단 치마 구름까지 드리워놓고 있단 말인가. 하늘과 얘기를 나누는 지상의 유일한 곳이었을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세속에 절어빠진 심성으로 비경을 바라보니 다리가 뻣뻣하도록 황홀하다. 이렇도록 신비로 둘러싼 이곳이건만 낯 선 등산객이 귤 껍질을 산 아래로 던지고 있다. 천년은 가야 할 남산 제1봉의 아픔을 본다.

하산 중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아 먹는 김밥과 한바탕의 권주(勸酒)로 분위기가 절정에 오른다. 가뜩이나 산에 취해 어찔거리는데 한잔 술이 더하니 부러울 게 전혀 없다. 마침내 선경에 접어든다. 일상 중에 시도때도 없이 품어보는 몽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느낌. 누구랄 것도 없이 다음에도 기필코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왁자하다. 이러다가 정기산행으로 정착되지 않을까.

가지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버스에 오르니 오후 3시가 가까웠다.

동호회 회장이신 장승우 국장님의 등산예찬론이 무겁게 가슴에 와닿는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를 주관하신 이창구 과장님의 노고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매화같다고 해 붙여진 매화산. 그는 생활에 지친 도시인의 심신을 한없이 순수하게 해줬다.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심신을 이렇게 맑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매화산의 늦가을 정취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김현호 기자 hyu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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