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거시기 값 (下)

2005.06.20 00:00:00

이운우(경주서)


오랜만에 보신 분이라 반가워서 인사 겸에 "오늘 많이 파셨어요?"했더니 퉁명스럽게, "…똥값에 넘겨줬지, 오후에 심심해서 날생이(냉이)와 오그락지(무우말랭이) 쪼매 갖고 나왔더니만 무싯날에다가 설대목 뒤끝이라 사가는 사람은 개미새끼(주부들) 한마리 없고, 앉아 있어 봤자 허리 아프고 발만 시리고…."

냉이는 중간상인들이 똥값(반값)으로 넘겨달라고 해서 열흘동안 추위에 떨며 언 땅을 뒤져 뜯은 것을 품삯도 안되게 팔고, 무우말랭이는 공짜(반에 반값)로 달라고 하는 통에 집으로 되가져가 이웃과 노놔 먹던지, 아니면 소를 먹이든지 하려고 도로 보따리에 싸갖고 가시는 길이라고 했다.

어물전 할매와 상인들이 말하는 똥값은 대체적으로 통상 거래되는 가격의 반값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그리고 할머니 말씀으로는 '촌사람이 갖고 오는 물견(농·수산물)이라고 해서 도둑질한 것도 아이고 나름대로 거래가격이 있고, 상도(商道)가 있는 벱인데, 무조건 깎자 하거나 절반이하로 사려는 사람들은 물건보다 그 사람(상인)을 업신여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물견을 팔 필요가 없다'고 했다.

차창에 어둠이 짙게 드리우고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데, 엊그제 나이 한살을 더 먹은 자신에 대해 인생의 값을 매긴다면 '과연 얼마짜리 쯤 될 것인가?'라는 自問 愚答을 해보았다.

흔히들 그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 그리고 出世間의 여부를 두고 평가를 하는 말 중에는 나이 값, 밥값, 인물값 등의 말들이 있다. 그 중에서 남자들에게 많이 쓰이는 것은 밥값과 나이 값인데, 직장이 있으니 겨우 밥값 정도는 할 수 있을까 마는, 나이 값과 인물값에 대한 것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고매한 품성을 지닌 인격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출세를 많이 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것도, 인물이 출중해 호걸남으로 남의 부러움을 사는 일도 없으니 값으로 따질 수도 없거니와 굳이 따진다면 몇푼어치도 될까 말까 한데 살아오면서 느낀 바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재물이 많다고, 높은 벼슬이라고, 학문 연마를 많이 했다고 해서 값이 많이 나가는 게 아니고, 때에 따라 값(나이 값, 밥값, 인물값 등 세가지 다)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그 값을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던데, 그것을 잘 할줄만 알아도 어느 정도 사람의 값(구실)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의 세상은 어떠한가!

인격과 언행 등 사람이 갖춰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값의 평가는 없어지고 소유물질의 과다와 지식(먹물)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 사람의 값을 평가하는 시대로 변했다.

그리고 요즘은 입도 비뚤고 거기에다 말도 비뚤게 하고 행동 또한 개차반으로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반대로 주위에는 인격자가 점점 사라지고 똥값도 못하는 인간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르게 하고,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아야 사는 것이라고 했는데….

*거시기 값 = 똥값


오상민 기자 osm115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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