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바람을 타는 나비들 같이<上 >

2005.07.18 00:00:00

이종욱(서대구서)


바람을 타는 나비들 같이 그 언제부터였던가. 인생이 지루한 것이라 깨닫기 시작한 것이. 천성이 게으른 나는 매일 분주한 삶을 살아가면서 항상 여유있는 삶을 동경했다.

누구보다 놀기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영화보기를 좋아하니 빠지지 않을 한량의 끼를 타고 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나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어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지방직 공무원의 길에 들어선 이래 야간대학을 다녔고, 다시 공직의 길에 들어서 사십 중반을 넘어 서기까지 변변히 놀아본 기억이 없다.

시지프스의 신화같이 쉬지 않고 바위를 산 정상으로 굴려 올려야 할 생의 억울함을 풀어보려고 직장에서 틈틈이 주어진 동호회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마다하지 않아, 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나서기를 좋아한 듯 생각된다.

그 중에 또 한 동호회를 찾아 들었으니 마라톤이었다. 입문은 엉성하게 했지만 달리면 달릴 수록 많은 가치를 지닌 레포츠란 생각이 든다. 치열한 경쟁에 짓눌려 살아, 목적없이 홀로 달리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아 좋았다. 물론 순위에 집착하면 이것도 문제는 달라질 것이지만 애초에 그러한 동기와는 거리가 멀다. 

업무를 마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공원을 힘겹도록 돌고 나면 어제까지 흉중에 깊히 박혔던 냉혹한 경쟁의 사회에서 나도 모르게 젖어버린 시기와 질투는 제풀에 잠들고 만다.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겨 왔던 생각, 나의 심사를 뒤틀던 미움마저도 내 한 몸을 쇠를 풀무에 달구듯 벼리면서 잊게 된다. '무릇 세상의 인간이 모두 재물, 명예, 장수의 욕망을 가졌거늘 그들을 탓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추스린다. 나도 다른 이보다 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었나. 홀로 무거운 발걸음 이끌고 한걸음마다 반성의 채찍으로 나를 치니, 마침내 무심한 마음이 돼 애를 써도 버리지 못하였던 탐욕을 끊을 수 있었다.

더불어 적지 않은 나이를 가름하는 듯 튀어나온 뱃살이 마냥 흔들리다 사라져 가고 몸은 한결 가벼워지니 더 없이 좋은 취미이다. 

그저 심신수양 삼아 달리다 보니 대회 참가에는 별 뜻이 없었으나, 직장 동호회 대회인지라 동료직원과 함께 춘 3월19일 새벽잠을 설치며 5시 대구발 버스를 타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통과해 동서울로 버스가 들어서니 9시경이 됐다. 여러갈래 줄이 방사선형으로 메달고 있는 독특한 올림픽대교를 지나니, 빅 이벤트가 벌어질 잠실종합운동장이 나타난다. 강변주차장에 버스를 대기시키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돌아올 때는 길 잃어 먹지 않도록 강 건너 빌딩위 광고판을 잘 봐 두라' 며 촌사람들 한마디씩 건넨다. 

보조경기장에서 회장님의 구령에 맞춰 모두가 몸을 풀고 경기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경찰악대의 밴드연주가 한껏 분위기를 돋우고, 풍선이 하늘을 비둘기떼처럼 덮고 날아가자, 출발 신호는 떨어지고 하프 참가자들이 먼저 스피드 칩을 출발선에 들이밀었다.

잠시후 청장님과 연예인 등 오늘의 중요인물이 집중 배치된 5킬로 참가자들, 유모차를 끌고 달리며 신이 난 초짜 아빠, 진한 부정으로 목에 아이를 올리고 달리는 아빠, 들뜬 마음의 행로를 쫓아가는 나도 스탠드를 메운 직원 가족들의 박수를 받으며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10킬로 참가자들이 한강시민공원 그린마라톤 코스를 향해 몰려나갔다.


윤형하 기자 windy@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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