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寸鐵活仁]歸國船을 기다리며 -8·15 回想記

2005.08.22 00:00:00

장재철(張在鐵) 本紙 논설위원, 소설가


 

필자가 8·15 광복을 맞은 것은 일본 구주(九州) 일본군 병영(兵營)내에서였다.
그러나 현해탄(玄海灘)을 건널 배편이 없어 만연히 귀국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퇴영(退營)을 한 그 지방 출신의 같은 소대(小隊)에 있던 호소다(細田)라는 친구가 찾아와 나를 데리고 어느 촌가(村家)를 찾아갔다. 두 전쟁과부(戰爭寡婦)가 하는 '목노술집'이였다.

호소다는 나이 30이 넘은 보충병(補充兵)으로 대학을 나온 인텔리(知識人)로 일본 군벌(軍閥)을 미워하고 전쟁을 싫어하는, 그 점에 있어서 나와 뜻이 맞는 군대내의 문제아(問題兒)였다.

시가지를 벗어난 교외(郊外)에 있는 술집에 들어서자 유카타(浴衣^여름철 맨살에 입는 홑옷) 바람의 젊은 여인이 우리를 맞아들이고 잠시후 점잖은 옷차림의 중년부인(中年女人) 한 사람이 조그만 '주안상'을 받쳐들고 들어와 무릎을 꿇고 술을 따랐다.

호소다와 두 여인은 평소 잘 아는 사이인듯 다정한 말들이 오고 갔다. 본시 주변이 없고 암뜬 나는 그저 따라주는 술잔이나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그러나 오랫만에 맡는 지분(脂粉) 냄새속 좋아하는 술잔을 드는 기분은 치당천금(値當千金^천금의 값어치가 있음)으로 더없이 유쾌한 것이였다.

그날 밤 호소다는 그 집에 남고 나는 기미요(君代)라는 중년부인의 집으로 갔다.

내가 졸라서도 아니고 그녀가 끈 것도 물론 아니지만 술기운을 빌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그렇게 된 것이였다.

언뜻 봐도 집은 작고 허술했지만 방안은 그 주인의 정갈한 성품을 말해주듯 아담하고 깨끗했다.

그녀는 내가 방안에 들어서자 죽은 남편인듯 싶은 벽에 걸린 액자의 흑포(黑布)를 씌운 군복(軍服)차림의 '남자사진을 뒤로 돌려놓고' 전등불을 껐다. '점령군(미군)이 들어오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 몸' 그때 일본의 젊은 여인들은 너나없이 모두 그런 심정이었다.

다음날 그녀와 나는 후쿠오카(福岡)시에서 가까운 기요세야마(淸瀨山)라는 얕은 산에 올랐다. 멀리 송림(松林)사이로 보이는 하카타만(博多灣)의 푸른 바다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때는 아직 잔서(殘暑)가 기승을 부리는 양력 9월초, 사람의 그림자조차 더위를 피해서 발밑으로 기어드는 한낮이지만 나뭇가지에 우는 매미소리도 한결 서늘하게 들리는 한적한 곳이었다.

온통 푸른 이끼가 주단(紬緞)처럼 깔린 넓은 바위위에서 그녀는 자기 무릎을 베고 누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혼잣말로 "당신이 좀더 나이가 들고 내가 젊기라도 한다면…"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얼마후 귀국선(歸國船)이 와닿고 내가 일본땅을 떠나는 날 그것을 알고 있는 '기미요'는 부둣가에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동안 지내온 따뜻한 정연(情緣)으로 봐서 조금은 서운했지만 '갈거(去)자 서러워 말라 보낼 송(送)자 나도 있다'로 마음을 고쳐먹고 '차라리 잘됐지.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 이별인데…'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배에 올랐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산과 여울과 섬, 마지막 보는 땅의 모든 것들이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김영돈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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