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2)

2006.11.06 17:24:05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2>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처음 겪은 체납세 징수 출장

 

'67년 7월에 이곳 안동세무서 조사과에 근무하면서부터 시작한 담배를 지금까지도 끊지 못하고 피워대고 있다. 그 당시 조사과는 지금의 조사과와는 달리 각종 세원자료를 처리하는 '자료처리계'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별 볼일없는 부서(部署)로 주로 우리 같은 신참들이 배치돼 자료처리 외에 다른 과의 체납세 정리도 분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담당한 체납세 정리구역은 '하늘 아래 첫 동네' 라고 불리는 영양군 수비면 일대였다. 안동에서 하루에 한번 출발하는 시골버스를 타고 영양에 도착해, 다시 수비면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만약 그 버스를 놓치면 좁고 험한 산골 비포장도로를 몇 시간씩 걸어가야만 했다.

 

현지에 도착하면 일단 양조장에 들려 출장신고를 한다. 그러면 양조장 사장님이 정해 놓은 여인숙으로 안내를 해줬다. 지금 생각하니 숙식비용을 한번도 내가 계산해 본적이 없다. 왜 그런지 몰랐지만 그 당시는 습관적으로 양조장에서 부담하는 것 같았다.

 

첩첩산중 시골동네라서 숙소로 쓸 수 있는 곳이 이 여인숙이 유일했다.

 

옆방과는 합판으로 갈라 놓고, 전구(電球)하나로 같이 쓰는데 만약 옆방에 여자와 같이 온 손님이 있는 날이면 이튿날 체납정리는 무지한 타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삼사일씩 걸리는 체납출장의 성과는 숙소인 여인숙의 옆방에 누가 들어오느냐에 달렸다.

 

어젯밤은 옆방에 손님이 없어 조용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시골마을에 흩어져 있는 체납자를 찾아 나선다. 어려운 교통사정으로 하루에도 몇십리씩 걸어다녀야 했다. 그 당시에는 시골에서 체납자라고 해 봐야 주로 양조장, 연초소매 집, 정미소(방앗간) 등이 대부분이었다.

 

일차적으로 면사무소에서 '위탁징수'로 끝나고(국세청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위탁징수한 대가로 교부금을 지급했음) 남은 체납이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거나 교통이 무지 좋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다 받아 봤자 불과 몇만원밖에 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나에게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만져보는 거액이었다.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어느 때는 해가 저물어 숙소까지 컴컴한 산길을 몇시간씩 걸어 가야 하는 때가 많았다. 우선 강도를 만날까 두렵고, 산 짐승도 겁이 나고….

 

그래도 큰 돈(?)이 주머니에 들어 있고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곳은 그 여인숙 밖에 없으니 기어이 거기를 가야만 한다.

 

산판(山坂)을 위해 닦아 놓은 찻길을 택할까 아니면 지름길인 산 하나를 넘는 산길을 택할까? 찻길은 두 시간이, 산길은 40여분이 걸린다. 잠시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

 

찻길은 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신에 덜 무섭고, 잘하면 산판나무를 싣고 가는 트럭도 만날 수가 있다. 반면에, 산길은 시간이 반(半)도 안 걸리지만 산등성이를 오솔길로 가야하니 무척 겁이 나고 무섭다.

 

'에라 모르겠다. 이 길로 가자!'

 

이 시간에 트럭이 다닐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산길을 택하기로 했다. 짐승을 만나면 던지려고 돌맹이를 주어 양쪽 주머니에 가득 넣고 강도를 만날 경우에 모면하려고 양쪽 양말속에다 돈을 감추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마음씨 착한 담배집 주인아주머니가 주던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처음 피우는 담배라 머리가 뱅뱅 돌고 어지럽다.

 

허름한 차림으로 우리 사무실에 온 그의 손목에 '로렉스 시계'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걸 압류(押留)해 버린 기억이 난다.
'내가 지독한 놈인 감….'

 

캄캄할 때 보다 달이 떠서 희끗희끗 무엇이 어슴푸레 보일 때가 훨씬 더 무섭다. 더군다나 초등학생 시절 누나가 들려준 학교 뒤뜰에있는 우물에서 올라온 귀신 얘기는 왜 하필 이럴 때 자꾸 생각이 나는지….

 

자꾸자꾸 담배에 불을 붙여댄다. 이제 저 산모퉁이를 지나면 내가 묵고 있는 여인숙이다.

 

그런데 그때, 산 중턱에 희멀건 물체가 보였다. 머리털이 치솟고 식은 땀이 비 오는 것 같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돌멩이를 잡으면서 "어흠!"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그 물체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나는 왔던 길을 혼비백산 되돌아 죽도록 뛰면서 수차례나 넘어졌다. 할 수 없다. 그 담배집에 가서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는데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남자가 반쯤 정신이 나간 모습으로 들어온다. 흙투성이 흰옷은 온통 찢겨져 있었고 땀에 젖은 얼굴하며 어디 부딪친 걸까? 이마엔 커다란 혹을 붙이고 나타난 그가 바로 아까 털썩 주저앉은 그 사람이 틀림이 없었다.

 

그는 바로 담배집주인 아주머니의 남편이었다.

 

"여보슈! 무슨 놈의 기침을 그리도 크게 하소! 나 기절했잖소?"

 

"기침하면 같이 기침 할 일이지 주저앉기는 왜 앉아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같이 웃었다. 처음 피운 담배를 한시간 동안에 한갑을 거의 다 피워버렸다. 그리고는 복통에다 구역질로 밤새도록 시달렸다.

 

정말 죽을 뻔 했다.

 

나는 '부과업무보다 징수업무가 더 중요 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거액을 추징한다 해도 징수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수십명을 동원해서 장부영치하고 수개월에 걸쳐 조사해서 부과한들 세금을 징수하지 못한다면 헛고생이다.

 

마치, 팔지도 못하는 불량제품을 힘들여 만든 것과 같이….

 

옛날에는 체납이 있으면 수십번이라도 체납자를 만나서 설득하고 아무리 산골오지라도 일일이 찾아다녔으며, 심지어 황소꼬리에 '압류딱지'를 붙여 현금 징수를 했던 선배님들의 피 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너무 쉽게 체납정리를 하고 너무 쉽게 포기(결손)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러분은 공부(公簿)상 부동산 소유 여부의 확인만으로 너무 쉽게 결손처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단 한번이라도 체납자를 찾아 만나 본적이 있습니까? 단 한번이라도 체납자의 집에 가 본적이 있습니까?

 

단 한번이라도 압류 딱지를 붙여 본 적이 있습니까?

 

부인(婦人)이나 장모(丈母) 명의로 신탁한 드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처남 이름으로 된 벤츠를 타고 거들먹거리는 체납자를 우리는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을지로 세무서에 근무할 때 일이다.

 

고액 체납자 甲의 공부상 재산을 조회해 보니 전혀 없다. 결손을 하기 전에 정말로 어려운가 한번 만나나 보자고 생각해 그를 세무서로 불러들였다.

 

허름한 차림으로 우리 사무실에 온 그의 손목에 '로렉스 시계'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걸 압류(押留)해 버린 기억이 난다.

 

'내가 지독한 놈인 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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