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4)

2006.11.15 17:52:22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6.  말썽꾸러기 두 녀석

 


 

영성이와 나는 그렇게 어려운 첫 출발을 했으나 마음과 행동만은 누구 부럽지 않게 떳떳하게 지내왔다. 크리스마스이브 때에는 세무서 강당에서 두 녀석이 주연배우로 등장해 우스운 연극을 공연하는 등 우리 때문에 안동세무서는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일도 잘했고, 매너 또한 수준급이었으니 윗분들이 좋아했으며 잘못한 일이 있어도 어리광으로 받아주셨다.

 


 

그러나 가끔씩 사고도 쳤다.

 


 

[사고1]     

 


 

한번은 마음씨 좋은 우리의 K계장님을 골탕먹인 사건을 저질렀다.

 


 

그 당시 안동시내에는 '단산옥'이라는 술집이 있었다. 상급관청 높으신 분들이 안동에 출장 오면 그리로 모시는 것이 최고의 접대였다. 그 집주인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모두들 '김마담'이라 불렀다.

 


 

K계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얼굴 동그란 것이 마치 보름달 같아 한명회 첩실 같고, 오뚝한 코는 양귀비를 닮았고, 도톰한 입술은 마치 춘향이 같고, 풍성한 몸매는 살찐 모나리자 같다'나.

 


 

나는 아무리 봐도 촌티를 못 벗은 여느 아줌마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호프 K계장님은 김마담이라면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사족을 못 쓴다.

 


 

시장, 군수, 서장, 높으신 어른들이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주제 파악 제대로 하지 않은 우리 계장님은 마냥 침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계장님을 두고 두 녀석이 그냥 있을 리가 없다.

 


 

"야! 심심한데 계장님 한번 골탕 먹여볼까?"

 


 

그날 저녁 우리는 하숙방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최대한 여자 필체로 깨알 같이.

 


 

<K계장님 보십시요 저는 단산옥의 김마담이예요. 결례인 줄 알지만 제 마음속으로 그리며 마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은 것 같아 큰 결심을 했습니다. 뵙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중략)…

 


 

○○월 ○○일 오후 4시 정각에 안동 '신사'에 오르는 스무번째 계단에서 뵙게 되는 설레임을 꾹 참고 기다리겠습니다. ○○년○○월○○일 단산옥 김○○ 드림>

 


 

그 당시에는 세무서 정면에 보이는 산등성이에 일제시대때 지어놓은 신사(神祠)가 있었는데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앞쪽에 가파르게 만들어 놓은 100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한 계단씩 올라가면 스무번째 계단이 세무서 2층 조사과 사무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계단이 나타난다.

 


 

'ㅎㅎㅎ 며칠 있으면 우리 계장님이 그 스무번째 계단에서 한여름 일광욕을 즐기실 거다'

 


 

편지를 봉투에 넣고 소인 찍힌 헌 우표를 떼어다 붙이니 우리의 작전(作戰)이 틀림없이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ㅎㅎㅎ 며칠 있으면 우리 계장님이 그 스무번째 계단에서 한여름 일광욕을 즐기실 거다'

 

편지를 봉투에 넣고 소인 찍힌 헌 우표를 떼어다 붙이니 우리의 작전(作戰)이 틀림없이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튿날, 우리는 출근을 하면서 그 편지를 행정계 직원책상 위에 아무도 모르게 슬쩍 던져놓고 2층 우리 사무실로 올라왔다. 잠시 후에 행정계 직원이 전달해 주는 편지를 받은 계장님은 하루종일 마치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 안절부절 정신을 못 차리셨다.

 


 

며칠 뒤, 편지대로라면 오늘 김마담과 만나시는 날이다.

 


 

아침에 이발을 하고 오셨고 못 보던 양복도 입으셨다. 혼자서 콧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손목시계와 벽시계를 번갈아 쳐다보기를 수백번 하셨다. 나는 계장님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직원들이 오늘 저녁에 단합대회 겸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는데 별일 없으시지요?"

 


 

즉시 계장님의 비명과 같은 절규가 되돌아 왔다.

 


 

"아 안돼! 오 오늘 저 저녁 우리집에 제 제사가 있어서 안돼!"

 


 

"…."

 


 

예상(豫想)한 대로 계장님은 근무상황부(그때는 외출부라 하였음)를 찾으셨고, 정확히 세시에 퇴근을 하셨다.

 


 

"놓치면 후회하는 구경거리가 있으니 오후 4시쯤 이층 조사과로 올라 오라"는 우리의 통지를 받은 직원 모두는 네시가 가까워지자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층으로 꾸역꾸역 모이기 시작했다.

 


 

"자아! 지금부터 우리 김 계장님이 '신사' 계단을 올라가십니다."

 


 

"20번째 계단에서 반드시 멈춥니다."

 


 

"그리고 한 시간이상 거기에 서 계실 겁니다."하고는 한시간이상 서 있으면 우리 두놈에게 저녁을 사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수박을 사겠다고 제의를 하니 모두들 찬성이다.

 


 

바로 그때, 저만치 건너편 '신사'아래에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계장님이 보인다.

 


 

"하나! 둘! 셋!… 스물! 스토옵!"

 


 

우리의 합창소리가 들리는지 계장님은 명령에 따라 한걸음씩 계단을 올라가다가 정확히 스무번째 계단에서 멈춰 섰으며 팔을 뻗어 손목시계를 보신다. 결과는 우리 두 놈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서장님에게 불려가서 '시말서'를 쓰고 뒈지게 혼이 났다.  

 


 

서장님은 전 직원에게 이 사실을 김 계장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라고 엄명을 하셨다. 그날 계장님은 무려 세시간을 그 자리에 서서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해질 무렵에야 계단을 내려가셨다.

 


 

이튿날, 출근한 계장님을 보고 직원 모두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내고 있었는데, 영문도 모르는 계장님도 따라 웃으신다. 나는 계장님에게 다가가서 또다시 짓궂은 질문을 던진다.

 


 

왜냐하면, 이번 기회에 김 마담에 대한 주책없는 생각을 아예 버리고 정신을 차리게 해드리고 싶어서 이다.

 


 

또한 사모님을 위한 우리의 특별한 배려이기도 하다.

 


 

"어제 제사 잘 지냈습니까?"

 


 

"으응! 집안 친척들이 너무 많이 와서 밤새 잠 한숨 못 잤다."

 


 

ㅋㅋ 다 알고 있는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계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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