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간의 이성이 빛나고 숭고하다고 하지만, 절대자인 신이 아닌 이상, 그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인간에게 자유를 무한정 부여하다 보니 여러가지 폐단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즉, 개인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되면서, 경제적 강자가 누리는 자유와 그렇지 못한 자의 자유에 질적인 차이가 발생했고,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서자, 프랑스 학설과 판례에서 개인이 '권리를 남용(Abus de Droit)'하는 경우에는 그 법률효과를 인정하지 말도록 했다. 이와 같은 혼란을 지켜본 독일은 1896년에 제정된 민법에서 아예 '권리의 행사는 그것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만을 가질 수 있는 경우에는 불허한다'는 이른바 로마법의 '쉬카네 금지규정(chikanevetbot)'을 조문화했다.
시간이 흘러 이 조문 정신은 아시아로 건너와 일본과 우리나라 민법에 영향을 줬고, 이는 우리나라 민법 제2조제1항의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와 제2항의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는 규정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이 조항은 국세기본법 제15조에서 '납세자가 그 의무를 이행할 때에는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해야 한다. 세무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에도 또한 같다'라는 규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보여지며, 법치주의 국가의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세법은 1996년 OECD 가입을 기점으로 하여 많은 질적인 향상이 있었다. 종전의 세법규정과 해석 및 심지어 대법원의 판례도 주로 과세관청의 세입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OECD 가입 이후에는 과세관청이 납세자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 '납세자의 권리'를 그래도 '한번쯤' 염두에 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동안의 사례를 살펴보면, 납세자의 권리 보장이 종전에 비해 월등하게 향상된 면도 있지만, '꾀가 많고 영악스러운(?)'납세자가 그 권리를 남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납세자의 권리 남용에 대한 과세관청의 대응방안이 신통(?)치 못하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법인격을 남용하는 것이다. 현행 세법은 사업자 중 개인형태보다는 법인형태에 대해 많이 관대한 편이다. 상법에서는 법인과 사원을 별개의 인격체로 취급해, 주주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만 법인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법인격 조항을 남용하는 경우 조세포탈은 용이한 편이며, 여기에다가 조세조약을 이용한다든지 아니면 조세피난처에 기업 설립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국내용'이 아닌 훌륭한 '국제용 탈세'가 가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남용을 어떻게 봐야 하며 과세관청은 어떠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하는가? '에이, 납세자의 권리보장도 아직 미흡한데 무슨 권리남용에 대한 대책을!'이라고 실무계에서 눈을 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글줄이나 읽고 쓰는 사람들은 '헌법의 재산권 및 납세자의 절세권 보장'운운하면서 소극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으며, 민법 책을 읽어본 사람은 '신의성실원칙에 남용도 포함된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옳은 지적일 수 있지만, 납세의무는 사회공동체의 '사회적 약속이자 계약'의 성격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납세자의 권리는 철저히 보장하되 이를 남용하는 경우에는 그 효과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납세의무의 이행은 국민 개개인의 법적 지식의 높고 낮음에 따라 '크게' 달라져야 될 성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있는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등의 조력이 있으면 세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와 같은 세제는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세제이다. 그러나 최근 론스타 등 외국계 펀드에 대한 납세자와 과세관청과의 법정 공방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 세법에 진즉 납세자의 권리남용에 대한 명확한 근거규정이 있었더라면, 해당 사건의 재판 결과는 달라져 있을 거라고 판단되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세기본법상 민법 제2조제1항의 규정은 이미 반영돼 있으므로, 제2항의 규정을 세법체계에 맞게 수정해 '탈세를 목적으로 한 납세자 권리의 남용은 불허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되, 세법 여러 군데 흩어져 있는 권리남용 방지조항을 추려서, 구체적이고 형식적인 행위요건을 열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세법과 민법상 신의성실조항의 내용과 구성이 균형을 맞추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국세기본법상 신의성실원칙 조항에 권리남용금지 규정을 추가하지 아니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그러한 일을 게을리해서 그 결과로 국가 패소비율이 높아져서 공신력이 망신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 나라가 이른바 '경제 살리기'에 집중되고 있지만, 그래도 이젠 경제를 살리되 '어떻게 살리는 것'인가도 중요하다고 본다. 경제를 살린답시고 옛날처럼 불법·부정·땅투기 등을 묵인하면서까지 경제를 살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여 김연아 선수를 배출한 나라의 국격에 맞는 '경제 바르게 살리기'로 정책의 전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나라의 정책목표가 30∼40년 전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래를 보고 젊은 세대를 보아야 한다. 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소수의 '뻔질뻔질'한 납세자의 권리 남용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대다수의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의 세부담에 대한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