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선 교수 "글로벌 최저한세, 기존 조세전략 무력화·형평성 논란"
美, 자국기업에 글로벌 최저한세 15% 미적용 G7과 합의
한국 다국적기업, 작년 추가 세액만 약 5천815억 달해
필라1, 불확실성에 이전가격 조세분쟁 급증 가능성…행정비용 증가 문제도

글로벌 디지털세가 복잡한 구조와 불확실성으로 인해 다국적기업의 세금 부담과 납세협력비용을 과도하게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 ·운영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미국의 소극적인 참여 태도와 개발도상국의 투자 유치 전략 무력화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며, 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유연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제언이다.
유지선 국민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20회 한국·중국세무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디지털세 필라1, 2가 다국적기업의 세부담에 미치는 영향’ 발표를 통해 디지털세의 핵심인 필라1(Amount A, B)과 필라2(글로벌 최저한세)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각 제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했다.
유 교수는 먼저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 이후 기존 조세전략의 무력화와 형평성 논란 등 기업들이 겪는 실제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국내 다국적기업들은 과거 베트남 정부의 세금 감면 혜택을 믿고 대규모 생산 기지를 설립했으나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으로 혜택의 실효성을 잃게 됐다. 특히 베트남이 자국 내 추가세 부과를 위해 적격소재지추가세(QDMTT)를 채택하면서, 삼성전자를 포함한 국내 기업들은 4천500억원이 넘는 추가세액을 베트남에 납부하게 됐다. 이는 기존 투자 결정이 무력화되고 세무전략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도 투자 유치전략 문제가 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케이만제도, 버진아일랜드 등과 같이 세율이 극단적으로 낮거나, 아일랜드처럼 명목세율이 15%보다 낮은 국가를 주요 규제 대상으로 삼아 설계됐다. 그러나 실제 추가세액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혜택을 제공했던 생산기지국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단기적인 세수 증가는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조세 경쟁력을 잃고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겪게 될 수 있다.
국가경쟁력 약화 문제도 검토대상이다. 올해 6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글로벌 최저한세 15%를 적용하지 않기로 G7과 합의하면서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전 세계 다국적기업 수가 가장 많은 미국 기업들이 세금 부담에서 제외된 반면, 한국 기업들은 2024년 한해에만 약 5천815억원의 추가세액을 납부했다. 이는 글로벌 최저한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와 그 기업들의 경쟁력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유 교수는 또한 필라1(Amount A & B)의 문제점으로 불확실성과 행정비용 증가를 제기했다. 필라1은 시장 소재국에 과세권을 재분배하는 새로운 국제 조세 체계지만, 복잡한 규정과 불투명성으로 인해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유 교수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필라1이 도입될 경우 국가별 이중과세 조정 전 우리나라에 3천193억~4천587억원의 세수 증가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대부분의 세수(90% 이상)를 미국 다국적기업으로부터 얻게 된다. 이는 미국의 참여 없이는 제도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 변화나 OECD의 혁신적 절충안이 없다면 도입이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Amount A의 매우 복잡한 배부 절차와 이중과세 조정 절차로 인해 기업과 과세당국 모두 막대한 행정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임의적 기준에 따라 과세형평성이 훼손되고, 과세 관할권 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Amount B는 단순한 마케팅 및 유통 기능을 수행하는 관계회사에 대해 표준화된 정상 이윤을 인정해 과세기준을 단순화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는 제도다. 규모가 작은 다국적기업도 Amount A에 비해 간편한 방식으로 제도를 적용받을 수 있어 이전가격 문제를 단순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할 목적으로 Amount B가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본 마케팅 및 유통활동’에 대한 모호한 정의 때문에 기업이 입증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또한 OECD가 산출한 기준 영업이익률은 전 세계 다국적기업의 평균값이다. 이는 개별 기업이 처한 경제 여건과 특수성을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평균값이 과세당국에 ‘기본 보상 수준’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심어주게 되면, 기업의 Amount B 적용 여부와 관계없이 이전가격 조세 분쟁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 규모가 크고 세무계획 역량이 뛰어난 다국적기업의 관계회사는 자사의 기능 및 영업이익률에 대한 대응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역량이 부족한 다국적기업의 관계회사는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어 이들 기업에 납세협력비용 및 세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즉, 역량이 부족한 기업의 편의성을 높이고 납세협력비용을 낮춰주겠다는 제도의 본래 취지와 반대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