寸鐵活仁 - 어떤 편견

1999.11.29 00:00:00

-입바른 어느 농민의 독백

논에서 벼를 베어내고 밭에 보리파종이 끝나면 시설원예 농가를 제외한 농가는 눈속에 묻혀 길고 고달픈 동면(冬眠)상태에 들어간다.
일년내내 땀흘려 얻은 것 치고는 정녕 어설프고 보잘것은 없지만 땅을 그지없이 사랑하고 욕심이 적은 그들에게는 더없이 값진 소득이며 풍년을 위해 뿌린 씨앗이 눈속에 자라고 있으니 그저 대견하고 흐뭇하며 무한한 평안과 안도를 거기서 찾는다.
자아를 억제하고 운명에 순응하여 좀처럼 남을 원망할 줄 모르는 것은 그들의 생활습성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남들과 별다른 제휴없이 자기들 손수 만든것을 먹고 살아온 그들도 6·25의 참고(慘苦)를 겪고 오랜동안 뒤틀린 민주주의 속을 살아오는 동안 같은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불신과 `팔자에도 없는' 정치를 배웠다.
인간이 사는 곳에 약육강식이 있고 범죄와 패덕(悖德)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난한 백성의 고혈을 빨고 탈세와 악덕으로 치부(致富)한 자에 되려 습복( 伏)을 강요당하고 그들을 응징하고 다스려야 할 공무원이 그 앞에서 꼬리를 쳐도 별로 허물이 안되는 세상이고 보면 `비둘기가 콩멍석을 지키고', `쥐가 고양이를 쫓아도' 별로 웃을 일은 못된다.
땅속에 묻은 한 알의 씨앗이 열개가 되고 백개가 되는 `소박한 수이(數理)'밖에 모르며 `땀과 노력의 공이(功利)'만을 믿고 살아온 그들도 이젠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으며 마구 뛰는 물가를 붙잡지는 못하면서 곡가(穀價)를 생산비이하로 매어두고 당장 오늘의 호구를 걱정하는 그들에게 기껏 한다는 소리가 농사자금 회수를 몇달 연기해 주겠노라 생색을 낸다해서 대뜸 가슴뻐근한 감동을 느낄만큼 어수룩한 그들도 아니다.
소란과 허세를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그들이 찔레꽃 향기를 아끼는 나머지 탱자울타리를 자르지 않는 `시심(詩心)과 낭만'을 지닌 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그저 미련하고 우둔한 소치로만 잘못 알고 실책(失策)을 거듭하면서도 가볍게 농민의 굽은 등을 도닥거려 주면서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라고 얼르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은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나만의 편견은 아니다.
아무튼 나는 그들 농민의 핏발선 지각과 소시민적 분별을 슬퍼하며 그들을 그렇게 만든 병든 세태를 그지없이 한탄할 뿐이다.


허광복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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