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상]`침묵의 함대'의 출항을 기다리며

2000.09.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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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변호사

`침묵의 함대'는 일본에서 국세청을 일컫는 말이다. 국세청을 `침묵의 함대'라고 부르는 이유는 각종 대형부패사건의 수사에서 큰 역할을 하지만,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고 검찰 특수부의 뒤에 머무르는 국세청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다테이시 가쓰노리'가 쓴 `침묵의 함대'는 바로 음지에서 탈세와 싸우는 일본 국세청 세무사찰관(일명 `마루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논픽션 작품이다.

이 책을 펼치면, 곧바로 일본 전역과 세계 언론을 떠들썩하게하고 일본의 자민당 40년 집권체제를 무너뜨린 `가네마루 탈세사건'이 어떻게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는지가 서술되고 있다. 한때 수상까지도 갈아치울 만큼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네마루가 `정치자금을 유용하여 무기명채권을 구입했다'는 소득세 탈세혐의로 구속·기소되고 그로 인해 자민당정권이 붕괴하게 된 데에는, 일본 국세청 세무사찰관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부패수사를 통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검찰 특수부이지만, 그 뒤에는 부패추적의 기본인 탈세조사를 통해 부패의 단서를 찾아내는 세무사찰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실존인물이면서도 일종의 주인공역할을 하는 동경국세국 사찰과장인 `아오노리'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조직융화적이고 자신의 일에 매우 철저하고 성실한 전형적인 세무사찰관인 그가 우연한 기회에 정계거물인 가네마루의 탈세사건을 파헤치게 되는 이야기들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그리고 탈세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벌어지는 은밀한 내사, 탈세추적의 클라이막스격인 가택수색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은닉된 탈세의 물증을 확보해 내는 과정들은 웬만한 소설의 긴장감을 뛰어 넘는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일본 국세청 사찰부의 역사와 사찰부가 해결해 낸 중요한 탈세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부패문제와 탈세문제로 홍역을 앓고있는 일본의 현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그러한 부패와 탈세의 고리를 끊기위해 노력하는 국세청 세무사찰관들의 활동이 실물경제의 상세한 흐름과 함께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책 한권을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으면 지하경제와 탈세의 메커니즘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은 논픽션답지 않게 매우 긴장감있는 호흡으로 일본의 정계와 관계 그리고 경제계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이나 정치인·관료의 부패, 각종 이권개입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책에서는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경기침체가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태만과 권한남용, 그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부실 때문이라는 것을 중요한 사건들의 배후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함께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 책에는 우리 나라에서 세금과 관련된 일을 하는 독자라면 흥미를 가지고 살펴볼 만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 우리  나라와는 달리 탈세혐의에 대한 내사와 가택수색 등의 강제조사를 전담하는 세무사찰관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한 것, 탈세가 범죄시되고 무겁게 처벌되는 것 등은 그런 독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독서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탈세의 5가지 숙명'이나 `주식회사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부담없고 유익한 읽을거리이다.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감하지 않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많은 감동과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을 덮으면서 든 바람은, 우리 나라에서도 `침묵의 함대'가 본격적으로 출항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김종상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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