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근 대구廳
무심한 아내가
사과를 깎는다
사과에 얽힌 전설을 아는지……
쑥 이파리 흙 들시고 뽀시시 하던 봄부터
황소독 해야 한다며
가시나무 동이채 불구덩이에 밀어 넣으면
도라무깡은 벌겋게 달아올라
황을 품은 물은 검붉게 끓어오르고
아직 잎도 나기 전부터 황소독으로 누렇게 뒤집어 쓴
그 사과나무에서
안될 것 같은 꽃이 피고
구슬 만한 열매 달린다
긴 여름
가뭄과 싸우며 한 방울 물을
그만큼의 땀과 맞바꾸는 동안
차츰 사과를 닮아간다
이방인들이 풍요를 노래하는 가을
그 가을은 새로운 노동의 시작
행여 다칠새라 숨죽이며
한 알씩 따다 담았지만
상인들이 들이닥쳐 이리 깎고 저리 깎여
자식들 등록금 마련하기 힘들었던 사과농사
그 농사를
팔자 좋은 아내 아무 생각 없이
이리 저리 두껍게 사과껍질 벗겨낸다
내 아픈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허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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