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에마당-꽁트릴레이]범을 찾아서(上)-2

2002.07.29 00:00:00

이종욱 김천署


그날은 황악산 산채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황악산이야말로 산나물이 지천에 널린 산이 아니던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재빨리 닥터K를 찾기 시작했다. 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산중턱 여기 저기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부께서 나물 캐는 비법을 가르쳐 줄 생각이 없나 보네."

송강 선생이 한마디 내뱉었고, 지친 우리는 따르기를 포기하고 중간에서 나름대로 취나물 같이 생긴 것들을 뜯으며 산길을 올랐다. 다래순을 따는 아주머니를 만나 닥터K의 행적을 물으니 길도 없는 비탈을 황급히 올라가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목장 짚차가 지나다니는 가장자리길을 따라 진달래와 철쭉에 한껏 취하며 유유자적하였다.

그제야 계곡 한편에 쇼핑백에 가득 담긴 산나물을 든 닥터K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송강, 이 사람아, 빨리 와보게. 내 따라 올라만 한참 배워야지."
"우째 그리 빨리 가십니꺼. 나물을 안 가르쳐 줄라카는 거 아입니꺼."

송강 선생의 한마디에 그는 빙그레 웃었다.

"저 입구에 나물 캐는 아줌마들 있제, 나물 캘 때 앞지르는 사람 있으면 아무 일도 안 되는 기라. 조금 있다 직원들 오면 우짤기고. 나물소문만 내놓고."

닥터K가 우리를 떨쳐버리고 달아날 의도는 없었겠지만 잠시 동안만이라도 사부를 의심했던 우리는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부터 잘 들어보게, 이 사람들아."

우리는 산나물 하나하나를 보려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비탈을 미끄럼 타며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취나물에는 참취, 곰취 등 여러 종류가 있고 잎에 털이 까칠하게 난놈이 '참취', 저기 우산처럼 생긴 놈이 '우산나물', 숟가락처럼 생긴 놈은 '놋숟가락', 저것은 '세신', 그리고 고사리를 하나 하나 가리켜 주며 어떤 것은 뿌리째, 어떤 것은 잎을 뜯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시장에서만 보아 왔던 고사리가 산기슭에 한줄기씩 돋아 있는 모습은 정말 신기하였다. 고사리 손이라는 생각이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이들을 이 산에 데리고 와서 닥터K가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참취나물 한 포기씩 들고서 가르쳐 주면 더없는 교육이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송강은 놋숟가락이라는 말을 한번 확인해야겠다고 했다. 생긴 것은 아주 놋쇠빛의 숟가락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놋숟가락이라고 둘러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모든 것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삶이 즐거워지지 않던가. 며칠전 고성산 아침 등산길에서 망개잎을 뜯어서 아침 반찬을 해 먹을 때도 그것이 먹어도 되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는데, 아침 반찬으로 먹어보니 제법 입맛을 돋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리 세 사람의 시간은 항상 그런대로 뜻이 깊은 시간이었다.

사무실에서 가까운 시내에도 식당들이 있었지만 돼지고기 요리로 유명한 지레 가기를 즐겼다. 그 때마다 닥터K는 진짜일듯 말듯한 이야기로 밤 마을의 추억을 만들어 주곤 했다. 냉장고의 원리가 사명대사가 일본에 조선의 포로를 데리고 올 때 일본군이 뜨거운 방에 넣어 죽이려 하였으나 코로 그 열기를 삼켜 시원한 냉기를 품어 일본인을 놀라게 한 데서 기인한다느니, 또 중동의 알라신이 우리말 경상도 사투리로 어린애를 뜻하는 '알라'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송강은 그 때마다 그 말의 근원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것은 의심이 아닌 철저한 확신을 갖기 위한 태도에 가까웠다.

오히려 나는 송강보다도 더 능구렁이인지 모른다.

아직까지 닥터K의 말을 열에 하나 정도 신뢰하면서도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이거니 받아넘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근거없는 이야기속에서도 다른 사람 하나하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려는 그의 마음을 속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윤형하 기자 windy@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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