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_隨筆]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꿈꾸며-③ 끝

2003.02.17 00:00:00

- 오연향, 천안署


理想이란 무엇인가?

소설가도, 표범도, 대중가요까지 집요하게 추구하며 도달하고자 애쓰는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한번쯤은 순수하게 理想의 추구에 바쳐진 그런 시절, 그런 추억을 갖고 있다.

돌아보면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 나는 情이라든지 사랑, 감동, 자연의 아름다움, 부드러움, 그런 부류의 정서를 혐오하며 심지어는 여성스러움조차 싫어했다. 삼단논법이나 정, 반, 합 등의 논리를 추구하며 이성적인 사고, 합리적인 철학을 신봉했다. 여자들의 일상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먼 認識을 추구하며 남성적인 사고를 지향했다.

극단으로, 극단으로 살고 싶은 나의 의식은 아무래도 세상과의 조화보다는 불협화음이 많았다. 현실과의 不和에서 오는 극심한 혼돈과 좌절을 겪는 와중에 내가 우연히 만난 것이 '바가바드기타'였다. 그 책을 읽고 크게 감동하여 도달할 수 없는 불안정한 나의 理想을 접고 불만스럽기 짝이 없었던 나의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생활인이 되었고 이제는 혼돈과 방황의 나이가 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마흔짝으로 늙어버린 것이다.

일전에 초등학생인 막내 아이의 수학 공부를 봐주었다. 도형을 다루는 단원이었다.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도형이 되는데 삼각형이 선의 차원을 벗어나 도형이 되는 시작이다. 그 삼각형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예리하기 짝이 없다. 어수룩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그냥 미끄러지는 구도이다.

지금 우리 아이의 수학책에 그려진 삼각형을 보며 내가 옛날에 추구했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연상되어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나는 삼각형 위에 반대의 삼각형을 그려 넣어 별을 만들어 본다. 또 선을 몇 개씩 더 그어서 육각형을 만들어 본다. 이리 저리 선을 덧 그려 넣으며 예리한 삼각형을 둥글게 만들려고 애써 본다. 마치 차가웠던 옛 시절의 정서를 지워버리려는 듯이 말이다. 예리함을 애써 뭉뚱그리려는 이런 행동은 지나온 내 인생에 대한 후회인가, 아니면 현재의 모습에 자신 없음인가, 무엇인가….

하얀 무서리가 말없이 겨울들판을 지키는 쓸쓸한 이 계절이 나는 좋다. 꽃도, 채소도, 열매도 다 떨구고 없는 빈 들판에는 조용히 생각에 잠긴 대지만이 지나온 세월을 되새김질하며 불어오는 삭풍을 견디고 있다. 들떠있던 생각들이 차분해지며 밖으로 향해있던 눈이 안으로 들어온다. 불안한 세상살이가, 이루지 못한 꿈들이, 매실주 익어가듯 조용히 숙성되며 가라앉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실은 언제나 가혹하고 구체적이며 전혀 理想的이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그것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청춘의 방황도 열정도 다 가버린 나이지만 '표범', '理想' 결코 나를 쉽게 놔주지 않는 주제이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고고한 영혼을 남긴 표범을 꿈꾸면서 세상살이의 모진 바람결에 낡아버린 내 인생수첩에서 理想이라는 단어를 살며시 꺼내본다.


이병욱 기자 web@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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