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순례의 길-두타산(下)

2004.09.20 00:00:00

이종욱(서대구서)


해발 1천353m의 두타산 정상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끼지 않았다면 동해를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뭉게구름이 바다를 내어놓지 않는다. 빨간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박달령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약 50분간의 가파른 내리막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관절에 무리가 오지 않도록 조심해서 내려간다. 우리 조는 '천둥산 박달재'는 아니지만, 여유를 찾기 위해 옛 노래를 한번 불러 봤다.

참나무 그늘에 덮힌 제법 넓은 박달령에 도착하니 점심식사를 시작하고 있다. 속도가 그다지 늦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모처럼 산대장과 회장님 및 선두의 빠른 조와 같이 식사를 해보는 오붓한 시간이다.

날아 온 돌에 맞은 일이 우연한 것임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돌은 아무런 죄가 없다.
설령 당신이 감옥에 들어갈지라도
병에 걸릴지라도
모든 외적인 활동의 가능성이 박탈당할지라도
당신의 내적인 생활은 당신의 지배 아래에 있습니다.


외부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한, 우리의 내적인 행복의 조건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내용에 공감하면서 어제 꿈은 뇌리에서 접었다.

박달령을 출발해 일행들은 해발 1천403.7m의 청옥산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우리 재미있는 조는 같이 동행하자는 일행의 청을 간곡하게 물리치고 옛 삼척지역 선비들이 넘나들던 무릉계곡을 향했다. 급경사 길을 1시간 정도 내려왔을 때,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계곡의 물소리다. 계곡에는 우리끼리만 보기에는 아까운 물들이 작은 폭포를 이루다가 소를 만들고 또 폭포를 만들고 소를 이뤘다. 바닥까지 투명한 귀한 보석이 물이 돼 흘러내린다.

물에 몸을 담그니 얼듯이 차갑다. 카메라를 들고 작품활동으로 몇점 찍고 뒤따라온 임 계장님과 명기씨와 함께 선녀의 탕을 유린했다.

첫 산행길에 염려했던 권여사 부부를 비롯해 모두가 정상을 향한 코스를 택했다. 대단한 체력들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조는 정상 정복의 재미보다는 오붓한 계곡길 산행에 맛을 들인지라 거침없이 한국의 무릉도원이라 할만한 무릉계곡을 향하지 않았던가.

하산길 주변에는 다래나무가 참나무를 타고 올라 참나무 잎새와 다래나무 잎새가 뒤엉켜 있고 대추모양의 열매가 올망졸망 달려 있다. 계곡의 물은 더욱 많아졌다. 집중호우가 몰아치면 위험하다는 신호인듯 계곡 주변에는 밧줄들이 많이 쳐 있다.

아, 범접하지 못할 자연의 위대함이여! 그랜드캐년의 모습을 TV에서 잠깐 보고 감탄했지만, 이 땅에도 엄청난 절벽이 '병풍바위'라 불리우며 길게 이어져 있다. 우리는 이 자연의 작품에 압도되며 계곡을 따라 하산길을 재촉했다.

두타와 청옥의 계곡이 만나는 쌍폭으로 향하는 길의 어귀에는 선녀탕이 있다. 칼로 두부를 자르듯 거대한 바위를 가지런히 잘라둔 가운데에 바닥이 들여다 보이는 깨끗한 물길이 있다. 이 물에 마음의 허물을 비춰보면서 세상사에 부질없이 싸움을 걸었던 나를 후회했지만, 사람이 사람인지라 신선이 되지는 못하리라.

청옥산 학등능선을 타고 내려온 주력팀과 다시 만나 찾아본 쌍폭포는 두 산의 정기를 조용히 담아내리고 있었다. 때로는 다정한 모습으로, 그러다가 제법 우렁찬 소리로 흘러 내린다.

천상에서 떨어지는 듯한 폭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빨려드는 듯한 용추폭포를 바라보며 넓은 바위에 누워 땀을 식힌다. 폭포물을 받아내는 소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다는데, 과연 물은 검은 망토를 걸친 듯 두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철계단을 돌아 올라가면 용추폭포 상단의 신비한 폭포가 항아리에서 귀한 술을 빚어내듯 물을 쉼 없이 퍼내고 있다. 오래 보고 있으면 취하고 말리라. 발길을 돌려 내려가는 길가에 학소대가 산 정상까지 펼쳐져 있다. 나그네의 발길은 어디를 가야 할 의무를 가지지도 않았기에 하늘문은 지나치고 매미소리를 들으며 한가롭기만 한 길을 걷는다.

그저 발 닿으면 한번 들여다 보고, 싫으면 지나쳐 가는 여유로운 길, 다리의 근육이 허락만 한다면 끝없이 걸어가고픈 旅情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

내 안에 있는 행복이여.
세상 시름일랑 노송에 붙들어 메고
무릉의 물줄기와 함께 노래하자.
하늘을 향해 돌팔매질 하지말고
삼복더위를 식히는 뻐꾸기 울음소리에 젖어
계곡에 몸을 담그고
어린애처럼 헤엄쳐보자.
티끌만한 상심도 없이
물과 길을 따라 순례의 길을 가자.



김정배 기자 incheo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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