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당신은 누구세요(1부-上)

2004.09.27 00:00:00

이운우(포항서)


토요일 오후 경주시 신평동 보문관광단지내 무궁화 다섯개짜리 초특급 현대호텔의 그릴 '반월성'으로 들어서자, 모처럼 들어보는 폴모리아 악단의 'love is blue'란 감미로운 연주음악이 잔잔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호화로운 인테리어의 거대한 호텔 로비는 해질 무렵의 석양에 젖은 노을과 함께 은은한 커피향기마저 먼 이국적인 분위기처럼 낯설어 보였다. 넓은 홀을 둘러봐도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가서 앉았다.

전일 근무라 오후 1시가 지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점빵(사무실)에서 혹시나 오는 손님을 고대하면서 멍하니 앉아 파리만 날리고 있는데, 고등학교 체육선생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면서 시간과 장소를 일방적으로 정하고, '5시에 마치니까 6시에 보문단지내 현대호텔 커피솝에서 만나자'고 했다.

'별일도 다 있네, 갑자기 웬 호텔이여, 보고 싶으면 대폿집에서 대포나 한잔하면 되지…'라 했지만 막무가내로 보자고 했다.

모처럼 친구가 보고 싶다는데 특별한 일도 없고 해서 '그러하마'라고 승낙을 하고 일과시간이 끝나자마자 늦게 가는 통근열차 대신에 직행버스를 타고 포항에서 경주로 가서 다시 택시를 이용, 약속시간을 맞추느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쫓아갔다.

오가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구를 유심히 바라보기나 그것도 아니면 창밖에 바람 한점없는 호수위로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백조 유람선을 바라보면서 무료한 시간을 때우며 친구놈이 나타나도록 기다리고 있는데 6시30분이 지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맞은편 대각선 쪽의 쇼파에 앉은 짙은 브라운색의 선그라스를 끼고 안경 밑으로 힐끔힐끔 자주 이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청미니 스커트에 늘씬한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직감으로 이쪽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때 누구누구씨를 찾는 메모판을 들고 다니는 딸랑이 맨(웨이터)이 딸랑딸랑 거리면서 프론트에 전화가 왔다고 해서 가보니 친구였다.

"야! 미안하다. 내, 오늘 급한 일이 있어 약속장소에 못 나간데이. 사정이 그래 됐다. 대신에 누가 널 찾는 사람이 있을 거야, 난, 원래 술 못 먹잖아. 대신 친구 니가 멀리서 온 귀한 (손님)사람이니 대접 잘 하고, 어떻게 좀 잘 (요리)해 봐라, 흐-흐-흐, 히히히이…"(웃음이 좀 요상스럽다)

"잘 하기는 뭘 잘해?, 아닌 밤중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와라, 배도 고프고, 술도 고프다 임마!"

못 나온다는 말과 함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혼자 뭐라 뭐라 지껄이는 통에 투덜투덜 신경질을 내며 좌석으로 돌아와서 앉는데, 여종업원이 메모지를 건네주면서 "어떤 여자 손님이 지하 바(BAR)에서 좀 뵙자는데요, 제가 안내해 드리죠"라고 했다.

'그래요, 누가?'라며 뜨악한 표정으로 반신반의하면서 시선은 건너편으로 쳐다보는데 그 여인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지하로 따라 내려가면서, '예감이 좀 이상한데…. 누구 장난일까? 술을 마시기에는 이른 시간인데 '스탠드 빠'라니, 무슨 일인고?'라며 '파라다이스'에 들어서니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스탠드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여인이 "아이구 이 선생님 맞으시지요? 잘 오시오, 이거 실례가 많갔시우, 오시라 해서 최송합니다"라며 화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경을 벗고 머리에 인 모습을 자세히 보니 30대 후반쯤 됐을까, 운동선수 같은 당당한 체격에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귀밑까지 웨이브해 감아올린 머리하며 브라우스 앞단추를 한개 살짝 풀어제친 모습이 첫눈에 건강미와 관능미가 넘치는 영화속의 원더우먼 그대로다.


김정배 기자 incheo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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