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寸鐵活仁]人生을 平易하게 보는 것은 感動이다

2004.12.06 00:00:00

그러나 濁流속에 휩쓸리지는 말자


 

장재철(張在鐵)
本紙 논설위원
소설가
굴원(屈原)은 중국 초(楚)나라의 공신(功臣)이며 이름난 시인이었지만 간신(奸臣)들의 중상(中傷)으로 조정에서 추방됐다. 그가 모아놓은 재산도 없이 거지꼴이 돼 각지를 방랑하던 중 강가에서 지면(知面)이 있는 어부(漁夫) 한사람을 만났다.
"선생은 삼려대부(三閭大夫:王三家를 다스리는 높은 벼슬)가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그 지경이 되셨습니까?"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 혼자 맑았고, 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 혼자 깨어있었다. 그래서 따돌림을 당한 것이다. "
" '속담에 성인도 여세추이(與世推移:세상 따라 변함)라는데 세상이 흐리면 같이 진흙탕 속을 휘졌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으면 같이 취한 척이라도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왜 그리도 깊히 생각하고 높이만 행동해서 그 고생을 하십니까?"
"내가 알기로는 머리를 감은 자는 관(冠)을 털어쓰고, 목욕을 한 몸에는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들었다. 어떻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뒤집어 쓰겠는가. 차라리 멱수(중국 호남성에 있는 江)에 몸을 던져 고기밥이 될지언정 세상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말을 듣자 그 어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사라졌다.
"창랑(滄浪^양자강의 지류(支流)의 하나)에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을…."
그러나 그는 어부(漁夫)의 그와 같은 간절한 설득에도 아랑곳없이 기어코 멱수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세상이 되어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독야청청(獨也靑靑) 고고(孤高)하게 살다가 안되면 초나라의 굴원처럼 깊은 물속에 '풍덩' 몸을 던져 버리는 게 옳은지? 얼른 판단이 안되지만, 그렇다고 제 주장만을 내세우고 꼿꼿이 직립(直立)으로만 살자니
一鉢千家飯(한 사발의 밥은 천집에서 얻은 밥이요)
冬暖草筵裡(겨울에 풀자리도 따뜻하다)의 노숙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눈앞에 떠오를테니 그것도 못할 짓이고….
인간처세(人間處世)의 묘체(妙諦)는 세상의 미움이나 배척을 받지 않고 자신의 뜻을 지켜내는 것인데 지금 세상에서는 남가일몽(南柯一夢) 헛된 꿈이다.
그래서 중용(中庸:四書의 하나)에서도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는 있어도 중용(中庸: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바른 것)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내게 안좋으면 나쁘다고 치는 흑백논리(黑白論理)가 판을 치고 쓸모있을 때는 상전 모시듯 해놓고 용리(用利)가 끝나면 내쫓아 버리는 호래척거(呼來斥去)가 예사인 각박(刻薄), 비정(非情)한 이념주의(理念主義) 정치하에서는 중정(中正)은 곧 잘된 자들의 적(敵)이고 좋게 말해서 무능(無能)으로 평가될 것이니….
차라리 들 가운데를 느리게 흐르는 강물처럼 안이(安易)하게 살자니 샛강에서 흘러 들어오는 온갖 오잡물(汚雜物)과 섞여야만 하니 인간의 생명윤리(生命倫理)가 놀라서 기겁을 할 것이고….
'빈 통이 소리가 높듯' 알맹이가 없고 화합(和合)이 없는 시끄러운 세태(世態)가 선량하고 착한 국민을 몹시 괴롭히고 있다.


강위진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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