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세월(下)

2005.03.28 00:00:00

(원제 : 2004, 2005. 오고 가고, 가고 오고)


그래서 내게 변명은 밥벌이로서 직업의 존엄성을 자각한 생존의 전략임과 동시에 나름의 애정표시이기도 하다. 의무적으로라도 애정표시를 하지 않으면 더이상 견딜 수 없을 그 어떤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속한 어디에서건 결코 엘리트이기를 지향하지 않으면서 생활의 어두움을 들추는 빛이 되고 싶고, 같이 출발해 남보다 높이 오르지 못한 무능이 죄가 되지 않을 것임에 경쟁에서 뒤쳐진 자의 동료가 되고 싶고, 낙담한 자의 친구이고 싶고, 희망없이 꺼져가는 의식속에서도 아직 살아있음의 증거로 존재하고 싶다. 그러기에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서로를 의지하는 밑가지가 되고 싶다.

조직은 조직 나름의 논리와 의무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하고,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은 조직이 부여한 의무에 합당한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면 된다. 나는 다만 그러한 기능인으로서뿐만이 아니라 추진의 연료가 되고 따스한 햇살이 돼 잠시동안의 휴식이 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원한다.

다짐하노니, 그나마 보잘 것없는 글쓰기가 최소한의 존재이유를 가지려면 적어도 그러한 기준에 부합되는 의무와 정성을 다해야만 하리라. 세상의 한켠은 갈수록 초라해지고, 또다른 한켠은 갈수록 화려함을 더해갈수록 움츠러들기만 하는 외소함에 비례해 나는 더욱더 내 오감의 촉수들을 바짝 세워야만 하리라.

그리하여 나를 속이고자 원하는 세상의 모든 허위의식들을 꿰뚫고 분쇄시켜 나가야만 하리라. 그러기 위해서 나의 의식은 더욱더 명료해져야만 하겠고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만 하리라.

나는 세상에 태어났고 나는 존재한다는 그 사실만큼 명료한 사실은 없을 것이므로 이제야말로 그 존재의 의의를 찾아야만 하리라.

존재하려는 의지에 관하여…

살아있음, 그 자체는 얼마나 전율이고 가슴 벅찬 일이던가. 그리하여 나는 자문하거나 존재이게 한 자, 스스로 존재 그 자체라 칭하는 자들에게 되물을 것이다.

"지금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스스로 초라해 자꾸 안으로 움츠러들면 들수록 그러면서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나의 자아, 당신의 자아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물을 것이다. 여기에 긍정의 답변이 나올 것 같으면, 나는 다시 물을 것이다. 지금 그대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 이후 펼쳐질 당신의 앞날에도 후회없는 선택으로서 지속시킬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자가 말하기를 지금은 쾌락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자는 허무라 할 것이고, 어떤 자는 절대자로의 귀의라 할 것이고, 또는 초월이라 할 것이고, 해탈이라 할 것이고, 순종이라 할 것이고, 소멸이라 할 것이고, 영겁회귀라 할 것이고, 기의 취산이라 할 것이고, 영원한 자유라 할 것이고, 그저 그 삶 자체가 의의라고도 할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삶의 완성이라고 저마다 말들의 상찬을 펼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선택의 결과 앞에서 다시 그 자리에 선 자기 자신, 나는 비로소 누구인가. 나의 나 됨은 무엇인가. 육체인가, 영혼인가. 육체는 소멸하는 것, 그렇다면 소멸하는 것 속의 영혼인가. 아니면 영혼은 불멸한다는 데, 불멸하는 것 속의 육체인가. 그것도 아니면 참으로 나의 나 됨은 자기속에 든 어떤 것, 그 안에 내재한 어떤 것인가.

의식, 무의식을 통틀어 가장 속에 든 것, 칼 융의 이론대로라면 에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만일 삶이 자아, 즉 나의 가장 심층에 내재한 에고(Ego)라는 것의 완성일 뿐이라면 에고는 완성을 지향하는가, 소멸을 지향하는가, 정체는 무엇인가?

그 에고가 바로 현재 나의 삶을 택하게 했을까? 문제는 이 세상에 자기 존재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될 것인데, 내게는 과연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까, 가능성이 없음을 지레 겁먹고 처음부터 시도조차하지 않았던 것일까?

단 하나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새해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원한다. 다소간 나의 판단에 실수도 있을 것이므로 내가 무엇이 돼야 하고 무엇이 되지 말아야 하는지 먼저 분별하고 나가기를 원한다.


강위진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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