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바람을 타는 나비들 같이(上)

2005.07.25 00:00:00

이종욱(서대구서)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참가자들은 강변을 시원하게 달린다. 목표를 수상권에 둔 선수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나갔고, 뒷줄에서 달리는 달리미들은 등수에는 무관한 축제의 한마당이다.

잠실경기장을 돌아 곧 한강변 공원길에 들어 발걸음 가볍게 달리며 한강너머 바라보니 서울의 위용을 과시하는듯 고층건물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강물이 흘러내려가고 나는 물을 거슬러 싱그러운 봄바람과 함께 달린다. 내 인생은 지금 몇㎞쯤 달리고 있을까. 즐거웠는가. 즐거울 것인가. 땀을 비집고 솟아나는 질문들에 차분히 대답한다.

인생은 그저 지나가는 것. 때로는 힘이 들지만 잠시잠깐 저 강변에 솟아나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가, 새싹들이 생명의 움을 틔우는 강둑의 허공위로 날아가리라.

호랑나비, 멧노랑나비, 모시나비, 청띠신선나비가 추운 겨울동안 나뭇가지나 바위틈에 웅크리고 있던 부끄럼을 떨치고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나비는 나는 것이 아니다. 대지 위에 부는 싱그러운 바람과 아지랑이를 타는 것이다. 제몸 하나를 깃털처럼 가벼이 해 기류를 따라 산과 강을 건너 들판에 노니는 것이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하프 1위 선수가 1시간11분대를 기록하며 100m 달리기 선수처럼 결승점으로 쇄도한다. 골인지점에서 숱한 인간 승리자들을 바라본다. 2시간을 넘겨 달려오는 선수들까지도 모두가 승리자인 것이다.

마라톤에서 스스로의 길을 잘 달린 것만으로도 축하받을 일인 것처럼 인생에서도 등수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완주 메달을 목에 걸어 보니 비록 5㎞를 달렸지만 만족스럽다. 남들에겐 우스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손에 질 수 있는 보상이 없다하더라도 한나절 빈둥대는 것보다 땀을 흘린 대가는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삶의 충만인 것이다.

안동으로 가는 버스가 먼저 출발하고 남대구행 버스에 이어 낙향을 한다. 피곤한 몸 깊은 데서 밀려오는 졸음이 행복하다. 밤새 진통을 겪은 환자의 새벽잠처럼 편안해 좌석을 뒤로 기울이니 창을 타고 드는 햇살이 아카시아 꽃을 먹을 때의 달콤함 같은 것이다.

직장인, 피부색깔이 다른 외국인, 노인과 어린이도 참여해 달리는 길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서로에게 인사를 보내고 함께 가자고 격려하며 달린 길에, 교통 경찰은 안전을 살피고 버스는 불편을 감수하고 길을 비켜준다.

5킬로를 달리건, 하프를 달리건, 자신의 목표가 등수에 드는 것이든, 건강을 위한 것이든, 즐기는 것이든 달리기는 잡념을 버리게 하고 달리는 동안에 순수에 들게 하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끝없이 달리는 톰 행크스처럼 답답하면 달려보는 것이다. '말아톤'의 초은이처럼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앞선자나 뒤에 선자나 한바탕 땀 흘린 후 뒤엉켜 웃어 보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바람을 타는 나비와 더불어 봄날의 꿈처럼 살아보는 것이다. 


김영기 기자 ykk95@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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