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인생에서 쇼당을 부를 때(1)

2006.02.06 00:00:00

방선아(서울청)


얼마전 내가 사는 다세대주택(빌라)의 윗층 다연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기된 목소리로 긴급 반상회가 있으니 빨리 3층으로 올라오라는 얘기였다.

전체 일곱가구 중 몇가구가 먼저 와있었는데, 다연엄마가 "차는 안 드려도 되죠?"라고 먼저 무 자르듯이 말을 하는 게 어쩐지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다.

원래 맘에 안맞는 모임에서 사교적 제스쳐를 취하지 못하는 나는 직장일이다 육아다 하여 반상회에 거의 참석한 일이 없고, 대신 남편이 반상회 거의 끝날 즈음(한 세시간 반상회를 하는데 그 중 두시간 오십분은 이른바 '수다'이기에) 얼굴만 내밀고, 반상회비를 내고 그 달의 전달사항을 받아오곤 했으니 반상회 돌아가는 일을 나는 전혀 모르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러다 오늘은 남편이 집에 없었기에 급작스럽게 내가 참석한 것이다.

현재 반장을 맡고 있는, 목소리가 크고 성질이 좀 있는 언니가 다연엄마한테 먼저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니까 이미 게임 끝났잖아. 벌써 네명이 그 돈을 당장 나누자고 했어. 그럼 된 거 아냐?"

다연엄마도 굽히지 않는다. "언니? 무슨 네명이야? 언니한테 말했으면 그게 다야? 이 자리에서 다시 공식적으로 의견을 들어보자니까!"

"그래? 어디 맘대로 해봐."
"@#$%$^…"

우리가 모이기 전에 이미 한참을 이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있었는지 일곱가구가 다 모인 자리에서도 현 반장과 전 반장인 다연엄마는 한참을 삿대질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참동안 상황파악을 못하던 나는 차츰 눈치껏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애기인즉, 얼마전 우리 건물을 여기저기 손 볼 데가 있어서 건물 신축시 건축주가 예치해둔 하자보수충당금으로 하자보수를 했다. 하자보수를 다 끝내고 돈이 남으면 그 돈을 가구당 균등하게 나눠갖기로 했는데, 이제 공사는 거의 다 끝나가고 한 가구당 약 40만원 정도의 남은 돈이 돌아가게 돼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견이 갈리었으니 그것은, 이미 견적(확정지출금액)이 다 나왔으니 지금 당장 금액을 나눠갖자는 '당장파'와 그래도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열흘쯤 더 기다려 완전히 공사가 끝난 후에 나눠갖자는 '끝장파'로 나뉘어 삿대질을 해가며 싸우고 있던 중이었다.

'끝장파'는 전임 반장으로서 이번 공사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다연엄마가 주축이 됐고, '당장파'는 현재 반장을 맡고 있는, 앞서 말한 목소리가 크고 성질이 좀 있는 언니가 주축이 됐다.

그래서 우리 일곱가구의 대표들은 각자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의견을 말하기 전에 스코어는 3 대 3으로 팽팽한 접전이었다.

끝으로 내차례, 결국 그 돈을 지금 나누느냐, 열흘 있다 공사가 완전히 끝난 뒤 나누느냐 하는 시점의 차이일 뿐인데 난 사실 이런 게 싸움거리가 되나 싶을 정도로 유치하고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선택을 해야 했다.

현재 스코어는 3 대 3. 내가 마지막 주자. 결국 내 한마디에 의해 '당장파'가 이기느냐 '끝장파'가 이기느냐 하는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김원수 기자 ulsan@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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