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稅友論壇] 세무공무원은 좋은 일도 못한다

2000.10.09 00:00:00

김청식 세무사



'79년, 필자가 세무공무원 초임지에서 겪었던 일로, 당시 담당구역에 목욕탕이 하나 있었고, 그 목욕탕 주인은 북에서 온 할머니였는데 목욕탕 수입으로 고아원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와 한 반이었던 김형과 일부러 거기서 목욕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얼마 되지는 않지만 할머니께 후원금을 드리곤 했다. 그러던 몇 개월 뒤 퇴근시간 무렵, 지금은 은퇴하여 같은 세무사업을 하고 계신 과장님이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는 자초지종을 묻는다기 보다는 언짢은 표정으로 핀잔을 주는 말투로 “이게 무슨 말들이냐?”고 물으면서 그 날짜의 부산일보신문을 내미셨다.

우리도 의아해하며 신문기사를 보니 아뿔사! 거기에는 우리의 목욕탕 선행(?)이 기사화되어 있었다. 과장님께서 우리에게 핀잔투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간단했다. “공무원이 무슨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 그런 적선을 했느냐?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세무공무원은 뇌물을 많이 받아 여유가 있으니 그리했다고 하지 않겠느냐? 좋은 일인 줄은 알고 있으나 생각이 짧았다”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일부러 의도한 바도, 누구로부터 칭찬을 바라는 행위도 아니고, 그저 좋은 일을 하는 할머니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결과는 그저 황당함이었다. 죄라면 직업뿐이었다.

그렇다. 그 돈이 뇌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잘못된 돈이라고 해서 좋은 일에 쓸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때의 순수함이 지금 오히려 그립다. 공무원 봉급은 뇌물이 고려된 결과 너무나 박봉이었으며, 그 당시 내 봉급은 하숙비로도 부족했다. 자존심 때문에 마누라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던 나 혼자만의 고민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그러한 잘못된 행위를 변명하거나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죄를 짓도록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그 죄만 탓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는 현실 앞에서, 모든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나는 공무원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또 한번 `아! 빨리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어야 되겠구나'하고 다짐했다. 입사할 때는 소주 반병정도면 나가 떨어졌던 내 술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고, 그러한 나만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해 사표를 제출하기까지는 9년이 넘게 걸렸다. 뇌물문제에 있어서는 공무원 자신이 제일 문제이지만, 공범인 납세자의 죄 또한 가볍지 않다고 보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도 보통은 피라미 공무원만 처벌된다. 언제 우리는 법대로 원칙대로의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그래도 우리는 기다리고 또 만들어지도록 애써야 함도 잘 안다.

오늘도 쾌로 묶여 가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그저 안쓰런 마음임은 나의 전직 때문일는지. 아무튼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고칠 수 있는지를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행동이다. 우리 모두가 고칠 수 있는 각자의 그 방법대로 행동한다면 우리의 조세문화는 훨씬 더 어른스런 내일의 모습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최찬희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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