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야기]진취적인 변신, 힘찬 도약을…

2001.01.01 00:00:00

뱀이 허물벗듯 묵은 해 과오벗고


2000년 밀레니엄 시대였던 경진년이 지났고 새로운 재도약의 발판이 될 신사년이 밝았다.

IMF의 체제하에서 경제적 위기의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 한파와 민족 분단의 벽을 넘어서려는 노력의 일환이였던 이산가족 교환방문, 그리고 국제적으로 우리 나라의 위상을 드높인 金大中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소식까지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갔다. 새해에 대한 계획과 소망은 각기 다르겠지만 희망의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올해의 상징동물인 뱀은 그 생김새 때문에 사람들이 징그러워하고 또 물렸을 경우 맹독성 때문에 생명까지 잃기도 해 두려움의 대상이다.

서양에서는 뱀을 지혜가 있고 교활한 짐승으로 흔히 악마로 지칭했던 반면, 우리 민족은 구렁이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용이 된다고 믿고 집을 지켜주거나 부를 늘려 주는 존재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설화속의 뱀

민담이나 설화 속의 뱀은 상당히 부정적인 동물로 인식돼 있다. 잘 알려진 `치악산 까치와 뱀 이야기'에서의 뱀은 복수를 위해 사람을 해치는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의 나해이사금 34년, 남쪽에 있는 창고에서 뱀이 나와 사흘을 울었는데 그 뒤 일년후 왕이 죽었다는 점에서 뱀을 앞날에 일어날 흉조를 알리기 위해 등장한 신이한 동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가 왕으로 재임한 후 6백12년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후 유해가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 떨어졌는데, 사람들은 이를 모아 합장하려 했으나 큰 뱀이 나타나 방해를 해 다섯 능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신의 뜻을 뱀이 전달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신라 48대 왕인 경문왕과 관련된 설화에 보면 경문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그가 머물렀던 전각에 매일 밤마다 뱀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고 한다. 사람들이 이를 쫓아내려고 하자 왕은 뱀이 없으면 잘 수 없다고 해서 쫓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뱀과 함께 잔다는 것은 경문왕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뱀과 같은 습성을 지녔거나 뱀이 허물을 벗고 재생한다는 관점에서 영생을 누리고자 하는 도술의 한 방편으로 이같은 행동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들은 상사일에는 머리를 빗거나 깎지 않았는데 이를 어기면 연중 뱀의 화를 당한다고 믿었다. 또 빨래나 바느질도 하지 않았고 땔 나무라도 옮기지 않고 집안에 들여 놓지 않았다. 집에 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뱀입춘을 써붙이거나 뱀지지기를 했다.

불교에서는 뱀에 대해 양면적인 의미로 해석하는데 불경 중에서 법화경(法華經) 등에는 뱀은 유혹(誘惑)과 애욕(涯慾)의 의미이다. 뱀은 제 몸을 그냥 드러내는 게 아니라, 꽃나무 뿌리 밑에 숨어서 사람을 미혹시키고 또한 `뱀은 악업(惡業)이 깊은 동물이라, 그의 일생이 대단히 괴롭다'고 하였다. 불교에서 유혹이란 남을 꾀어서 정신을 어지럽히거나, 나쁜 길로 꾀는 것을 말하고 애욕은 욕망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일을 이른다. 이렇게 뱀은 사람을 악업에 빠지게 하는 동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사람을 구원하는 의미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픈 사람을 구원한다는 약사여래의 12대원을 통달한 12선신인 약사 12신장 중 여섯번째 산저라 대장은 곧 뱀을 상징하는데 일체의 불구자로 하여금 모든 근이 완전하게 하는 원을 빈다고 한다.

12지신의 뱀은 관자재 보살로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워 지혜의 등불을 밝혀 주고 가르쳐서 올바로 살게 교육하는 보살이다. 중생을 가르치다가 희귀한 중생을 만나 스스로 막히게 되자 복잡하고 오묘한 중생계로 내려와  실제로 체험하고자 관자재 보살은 뱀신이 되어 스스로 광명을 터득하고 학문을 넓히는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과거에 사람들은 신은 죽어서 모신의 가슴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고, 그것은 달이 그늘을 벗어나 보름달이 되는 것과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을 동일시한 것이라고 한다.

서양에서의 뱀의 의미는 각 나라마다 다른데 구약성서의 선악과와 뱀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뱀은 지상의 모든 동물 중 가장 교활했다'라는 구절이 있고, 신약성서에 `뱀처럼 신중성 있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이 두 구절에서 뱀이 `교활성'과 동시에 `신중성'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뱀을 `의약', `예술', `시'와 연관시켰다. 극동·아랍 세계는 뱀을 숭배하고 뱀의 상징적 가치를 강조한 반면,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은 이를 거부하고 뱀을 악마와 동일시 했다.

한편 신비주의자들 역시 뱀을 숭배했는데 랍비의 전통은 `창세기의 뱀'을 유사이전에 존재했던, 발이 달린 거대한 `도마뱀류'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뱀과 드래곤은 동일시되고 있다. 용을 뜻하는 범어의 `Nagah'는 원래 인도 아리안족이전의 스키타이족 사이에 있었던 사령숭배를 뜻하는 말이었다.

뱀의 상징성

뱀에 대한 민속 신앙에는 `업'이라는 것이 있다.

업은 흔히 `집안 살림이 그 덕이나 복으로 늘어가는 것으로 믿고 소중히 여기는 동물이나 사람'이라고 한다. 업동물로는 구렁이 두꺼비 족제비 등이 일컬어지는데 구렁이가 가장 일반적이다. 또 업단지는 살림을 늘게 해 주는 신을 모신 단지로서 주로 쌀이나 돈을 넣는다. 이 업단지는 지역에 따라서 곳간에 모시기도 하고 뒤꼍에 터주와 같이 짚주저리를 씌운 업가리를 모시기도 한다.

뱀을 업의 존재로 소중히 여기는 풍습은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있다. 이는 뱀을 풍요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신성시 한 점을 잘 나타내 준다.

뱀이 재생한다는 인식은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들이 겨울잠을 잔다는 것과 허물을 벗는 동물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동물이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런 인식의 틀은 허물을 벗고 인간이 되는 유형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뱀이 재생을 의미한다는 것은 새로운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매일 떠오르는 해속에 뱀을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점에서는 뱀이 용으로 승천하는 존재로 이해되는 것을 들 수 있다. 뱀이 용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자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동물인 뱀이 하늘을 날 수 있는 용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완전한 다른 존재로 상승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뱀이 사람의 도움으로 용이 되자 그 은혜를 보답하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 오래 묵은 구렁이가 용으로 변했다는 부분은 우리 민족이 구렁이를 일반적인 뱀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서로운 동물로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안해선(安海善)기자〉



허광복 기자 inf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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