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43)

2007.04.24 09:09:59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다음해 1월달이다.

 

면세수입금액 신고기간인데 국장님이 박 계장만 믿는다면서 목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고 울대수술을 받으신다며 서울대학병원에 며칠간 입원을 하셨다.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치시더니 드디어 울대도 탈이 났구먼.'

 

'울대 고쳐서 누굴 또 작살내려고….'

 

직속 국장님이 입원을 하셨는데 어쩔 것인가?

 

졸개들은 특히, 1계장 H와 2계장인 나는 거의 매일저녁 퇴근후에 문병을 갔다.

 

"어이 1계장! 국장님이 내일 퇴원하신단 말이야. 이런 좋은 찬스를 그냥 보내면 쓰것소?"

 

둘은 국장님을 이번 기회에 골탕 먹일 방법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를 한 결과 꽤 괜찮은 방법을 발견하고는 그걸 써먹어 보기로 했다.

 

"옳커니!"

 

퇴근을 하고 저녁 늦게 병원에 가보니 세무서 과장들 몇 사람이 문병을 와 있었다.

 

울대 수술을 받은 국장님은 말은 못하고 손짓이나 종이에다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하고 계셨다. 만약 크게 웃거나 기침이나 말을 하면 수술한 울대가 터진다 해서 극도로 조심하고 계셨다.

 

국장님이 손짓으로 모두들 그만 가보라고 하신다.

 

그럼 슬슬 우리의 계획을 시작해 볼까?

 

H계장이 누워 있는 국장님 앞으로 가서는 자기도 말을 하지 않고 판토마임으로 손짓을 해댄다.

 

H는 손가락으로 국장님을 가르치다가 다시 천정을 가르친 다음 한손을 좌우로 내저었다.

 

그러고 난 후에 다시 두손을 모아 자기 뺨에 갖다대고는 쿨쿨 자는 시늉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양손을 힘차게 흔들면서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씩씩하게 걸어왔다.

 

말은 하지 않고 동작만으로 그렇게 하고나니 국장님과 문병온 과장들은 무슨 뜻인지를 모르고 모두들 의아해 하고 있었다.

 

국장님이 나에게 볼펜과 메모지를 달라는 시늉을 하셨다.

 

국장님은 메모지에 이렇게 적으셨다.

 

'무슨 뜻이고?'

 

이번에는 나의 차례다.

 

나는 아까 H계장이 하던 대로 똑같이 시늉을 하며 이번에는 큰소리로 말을 하면서 설명을 드렸다.

 

"국장님!" 하고 나는 손가락으로 국장님을 가르치면서 소리쳤다.

 

움찔 놀라면서 영문을 모르고 빤히 쳐다보신다.

 

"저기 사무실 일은"하면서 천정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시고"하면서 한손을 좌우로 젓다가 "건강한 몸으로 출근하십시오"하면서 씩씩하게 양손을 흔들면서 문쪽으로 걸어나갔다.

 

문병온 과장들과 국장님이 웃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 킥킥 대는 순간 모두가 "우하하 깔 깔깔" 소리내 크게 웃어버렸다. 국장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수술한 울대가 다시 터져버린 국장님은 재수술을 받으시고 며칠을 더 입원실에서 고생을 하셨다.

 

출근을 하신 국장님은 즉시 우리 두사람을 불렀다.

 

죽일 작정인 것 같다.

 

"이놈들! 그게 문병이냐? 문병이냐?"

 

"…"

 

"저희들은 그냥 국장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복수를 한 셈이 되었다.

 

서울대학 정치과를 나온 그분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일에 대한 욕심도 강하셨고 호된 질책도 가끔씩 하지만 자기 직원을 엄청 챙기시는 분이었다.

 

한마디로 화끈한 분이셨다.

 

 

 

 

 

47.한심함의 극치!

 

그렇게 누구나 들어오기 싫어한다는 서울청 소득2계장으로 들어온 지 벌써 3년이 돼 간다.

 

그동안 국장님도 과장님도 세분씩이나 바뀌었는데도 나는 일에 묻혀 어딜 좀 보내달라는 소리 한번 못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옆자리 H계장은 서기관 승진을 바라고 있다지만 나는 도대체 뭐냐.

 

정말이지 그때까지도 나는 2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주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자리가 누구나 희망하는 괜찮다는 주요(主要)자리라면 나 같은 놈이 이렇게 오래 있을 수 있겠는가?

 

벌써 밀려나고도 수백번 밀려났겠지요.

 

나는 그곳이 아무리 고생하는 자리라 해도 윗사람들이 알아서 보내줄 때까지 운명적인 자리라 생각하고 묵묵히 일만 하고 있었다.

 

외부인에게 청탁은 물론, 윗분에게 어디로 보내달라는 말 자체가 부조리하며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됐다.

 

정말이지 나는 그렇게 직장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자형이 물려준 빚더미, 처가와의 갈등, 우리 계 직원들의 축처진 사기(士氣) 등등.

 

공사적(公私的)으로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일절 내색을 하지 않았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사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밖으로는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로 행동을 했다는 것이 나의 진실이다.

 

유머나 진한 농담으로 표현하며 나를 위장하고, 명랑한 척 애를 썼다.

 

그래서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좋은 자리에서 장기집권하는 줄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본청의 L직세국장님이 나를 찾으셨다.

 

"박형! 잘 들으시오. 오해 말고…·"

 

"이번에 본청 인사계장 후임을 정하는데 당신 이름도 거론이 됐는데 청·차장님이 아주 좋아하십디다."

 

"결국 딴사람이 됐지만, 내가 왜 이런 소릴 하느냐 하면 자네도 가만있지 말고 어떤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대시를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기 때문이오."

 

얼마나 보시기에 답답했으면 그런 말씀을 하실까?

 

결국 힘을 좀 써보라는 말씀이다.

 

나의 힘이 곧 내가 모시고 있는 윗분들인데 윗분이 그러시니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심으로 아껴주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분의 이런 말씀은 4년 뒤에 또 한번 더 듣게 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직장생활을 한 것 같지만 오히려 나는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지방청 소득2계장 생활을 방배동 집 가까이에 있는 '반포세무서' 법인세과장으로 가게 됨으로써 청산하게 됐다.

 

잘 나가시던 분들이여,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제가 바로 한심함의 극치가 아닙니까?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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