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45)

2007.05.02 08:45:28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본청으로 가자마자 6급이하 직원들에 대한 인사작업을 하는데 직원들은 벌써 며칠째 밤샘을 하며 고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인사소표'를 갖고 기준에 따라 분류하며, 정리하고, 집계하고, 검토하는 전(全)과정을 지켜보면서 이제까지 나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리저리 보내졌구나!

 

묘한 생각이 들었다.

 

70년대에 5공화국 정권이 들어서면서 각 부처의 공무원 중에서 문제가 있는 직원을 개혁 차원에서 해직시켰는데 그 대상자 선정을 각 부처에 맡기고는 대상인원까지 지정한 모양이다.

 

그게 어디 자체에 맡겨서 될인가?

 

무리하게 해직을 시키다 보니 주로 힘없는 여직원들이나 성격이 온순한 남자직원들이 당하게 됐다.

 

궁여지책으로 어떤 세무서에서는 직원들에게 투표를 시켜 당첨자를 가리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서는 체납정리 실적이나 자료처리 실적 등을 따져서 정하는 등 해직대상자 선정에 무리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힘을 모아 소송을 하게 됐고 정권이 바뀌자 승소해 이제 복직단계에 있었다. 이들을 각 서별로 배치를 한 기안문을 보니 기가 막혔다. 전원을 영월, 홍천, 의성, 영덕, 진안, 벌교 등 3급지 세무서로 배치를 해 놓았다.

 

그 업무를 보고 있는 담당직원에게 왜 이렇게 오지로만 배치를 해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공무원법상 해직자의 특채조건이 도서벽지(島嶼僻地)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걸 기안해 놓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결재를 올리려 하는 직원을 호되게 나무랐다.

 

나는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다.

 

십여년을 해직으로 인한 주위의 눈총, 직장을 잃고 당한 경제적인 고충 등 온갖 고초를 당하고 복직을 하는데 다시 시골세무서로 배치를 한다면 또다른 고충이 발생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단 결재를 보류했다.

 

국세청에서 '도서'란 울릉도 지서(支署) 밖에 없다는 점, 벽지라고 할 만한 세무서도 없다는 점, 굳이 한다면 3급지로 보낼 수 있는데 정원이 넘어버린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국세청은 2급지이하를 도서벽지로 보도록 해달라고 총무처에 건의를 하고 끈질긴 절충 끝에 예규(例規)를 받아내는데 성공을 했다.

 

그래서 그들을 수도권 세무서로 배치할 수 있었다.

 

인사계에서 내가 한 첫번째로 보람된 일이었다.

 

51.  청장님의 의지

 


인사에서 가장 기본바탕은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인사권자의 의지(意志)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의지는 다른 요인에 의해서 예외가 생길 수도 있으나, 예외가 일반화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 참모들이 인사권자의 기본이 변하지 않고 바른 판단을 내리실 수 있도록 직언(直言)이나 조언(助言)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참모들의 가장 큰 권한이자 책무임에 틀림없다.

 

눈치만 보고 할 말은 하지 않는 참모는 그 존재가치가 없다.

 

인사계 사무실은 유일하게 청장실과 같은 10층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국장님들이나 과장님들이 청장님 표정이나 심기가 어떠시냐고 전화로 물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 국세청의 업무가 청장님의 표정에 좌우되는 것인가?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면 급한 결재도 안 받을 건가?

 

그러면 일년뒤에야 표정이 밝아지면 어떻게 하려고?

 

심기가 불편하시다면 참모들이 가서 풀어 드리면 될 것이 아닌가?

 

 

 

나는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 국세청의 업무가 청장님의 표정에 좌우되는 것인가?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면 급한 결재도 안 받을 건가?

 

그러면 일년뒤에야 표정이 밝아지면 어떻게 하려고?

 

 

 

이야기가 빗나가 버렸다.

 

하여튼, 인사원칙이나 기준을 아무리 잘 만들어 놓았다 하더라도 지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인사의 성패는 조직 전체의 사기로 이어지고 이것은 곧 업무의 성과로 직결된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다.

 

적소(適所)에 앉힐 적재(適材)를 잘 찾는 것이 인사권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본다.

 

뒷배경이나 사적인 친분을 먼저 찾기 보다는 우선 원칙이 정하는 울타리 안에서 적재를 찾아야 한다. 만알 찾지 못한다면 참모들에게 찾으라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왜냐하면 내가 모셨던 S청장님이나 C청장님 두분 모두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시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국세청에서는 어디 9급 직원 한사람이라도 청장님이 맘대로 승진이나 전보를 시킬 수 있었는가?

 

'인사관리 규정'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사실 '국세청 인사관리 규정'은 인사권자의 제량권을 너무나 세밀하게 그리고 너무 심하게 제한하는 규정이다.

 

예를 들면, 직원들의 전·출입 기준, 급지별로 구분한 순환보직기준, 하향 전보자 수도권 전입기준 승진기준 등등.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는 이러한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셨고 인사계장은 청장님이 혹시나 규정에 어긋나게 판단하시지 않은지를 검토하고 재고하시도록 건의하는 역할을 담담했다.

 

나는 청장님의 기분에 상관없이 할 말은 기어코 했다.

 

얻어터져 가면서.

 

특히 S청장님은 청탁 직원은 인사, 감사, 조사 등 3사(査) 업무분야에는 절대로 앉혀서는 안된다 하셨고, C청장님은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지키셨다.

 

그리고 가능한 고충을 해소하는 인사를 강조하셨다.

 

그래서 국세청 인사는 기강이 서 있었고 잡음 한번 나오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경찰청이나 동아일보사 등 다른 기관의 요청으로 국세청의 인사관리체제에 대한 노하우(Know how)를 전수한 바도 있다.

 

그만큼 국세청 인사는 잘하고 있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소위 발탁인사는 조직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으나 그 전(前)에 그 사람만큼은 발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조직 내부에서의 공감(共感)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발탁은 당사자만 좋아할 뿐, 나머지 전체 직원을 열받게 해 일하는 조직 분위기를 해치게 된다.

 

그 당시에도 사무관 승진을 시험에만 의존하지 말고 평가에 의해 승진할 수 있도록 총무처에서 허용을 해줬는데, 장·단점을 분석 검토해 청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C청장님은 현 실정에서 '발탁'이 난무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많을 것을 예상하고 보류해 스스로 재량을 축소하셨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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