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목을 들으면 어디선가 들은 듯 친숙한 느낌이 든다.
사실은 비교적 옛날(필자로서도 40여년전)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공부했던 수필의 제목인 것이다.
그 저자는 독일의 안톤 슈낙(Anton Schnack, 1892출생 )으로 신문기자, 편집자로서 활약하면서 세계 1·2차대전에도 군인으로, 참전기자로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기도 했다는데 말년에는 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10대 청소년들의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었기에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몇십년 후까지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하게 하고 있다.
그 작품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해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동물원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마리의 범의 모습도 우리를 슬프게 하며, 오뉴월의 장의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등등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다분히 문학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로 쓰고 있었다.
이제 우리, 아니 필자는 이 제목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전 미국의 버지니아주에서 총기난사로 32명이나 사살하고 자신도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전해졌는데, 특히나 범인이 우리 한국에서 태어난 교민이라고 했으니,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놀라움으로, 그러다가 차츰은 근래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일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자주 우리 주위에서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어느 자동차회사의 노조, 특히 붉은 머리띠를 두른 노조원들의 모습이 우리를 안타깝고 슬프게 하고, 정치권에서나 우리 주변 여러 곳에서 1·2등 이 아니면 그 판을 깨고 정당한 승부를 하지 않으려 하거나, 이왕 슴부가 결정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례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며, 더 노력하고 장점을 발휘해서 상대의 위에 서려 하기보다는 그를 끌어내려서 이기려 하는 고질적인 네가티브 근성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 아닐까 ?
우리가 하루에도 몇시간씩 있어야 하는 도로에서 서로 최소한도의 기본적인 양보를 할 줄 모르고 "니가 그 모양이니, 나도"식으로 아예 전투의식을 갖고 운전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슬퍼진다.
전국 여기저기에서 화장장, 핵 폐기시설, 장애자복지시설 같은 환경·혐오시설들을 설치하는 계획들이 모두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쳐 큰 홍역을 치르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모두 안타깝고 슬퍼진다.
그런 시설들이 필요한 줄은 알되, 우리 동네에서는 안된다는 소위 님비(Never in my back yard)현상들이 만연해 있다.
마냥 슬프게 하는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는 일들도 적지 않기에 우리 사회는 유지되고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고 또 다른 활력을 얻어 나가는 것이리라.
얼마전 이제 마라톤 선수로는 환갑이 가까운 이봉조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그것도 역전을 하면서 좋은 기록으로 골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우리를 기쁘게 했고 우리 한국선수들은 안된다고 하던 수영에서 그리고 스케이트, 기록경기와 피겨종목에서 동시에 세계를 제패하는 쾌거들을 보면서 우리는 충분히 즐거워 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소식들은 대체로 스포츠 소식이었던 것 같다.
2000년을 전후해 IMF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그래도 우리 국민을 즐겁게 했던 것은 미국에서 야구와 골프로 활약하던 두 박 선수였던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고, 그외에도 행상(行商)을 하면서 자신도 어려운 일생을 살아온 할머니가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부했다는 소식 등은 우리 사회의 밝고 즐거운 소식이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은 '우리를 슬프게 또는 기쁘게'에서 '우리'의 범위가 소식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다.
요즈음같이 주식시장이 활기를 띄고 어떤 주식들의 가격이 크게 올라도 일부 제한적인 사람들을 즐겁게 할 뿐이고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소외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과도한 부동산 투기를 규제하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들이나 공동주택(아파트등)의 공시지가가 금년에 평균 22%나 올라서 평균 종합부동산세의 부담이 작년 210만원에서 올해 320만원으로 증가한다는 소식 등은 스포츠나 행상할머니 소식의 '우리'가 4천만 이상의 전국민이었다면 불과 한줌의 우리(종합부동산세 대상자는 38만명이 된다고 추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정치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우리'를 택해서 계층간·지역간의 대립을 조성하기도 하고 숫자로 훨씬 많은 대상(우리)를 즐겁게(Happy하게) 한다는 소식을 남발하는 소위 포퓨리즘의 실패사례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정치인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우리'가 되는 이해와 양보로 조화를 이루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또 기쁨은 함께 나누면 두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과 같이 버지니아 쇼크(슬픔)도 침착하고 지혜롭게 대처한 국내외의 우리 교민·국민들 그리고 냉정을 되찾은 미국민들이 우려하던 반한감정보다는 "왜 그런 일이, 앞으로는" 쪽으로 현명한 대처를 하고 있다.
즐거운 소식들에 있어서도 흥분과 자만은 금물이며 앞으로도 계속 즐거운 소식, 더 즐거운 소식이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그 당시 문학적이고 감상적인 추억들이 이제는 새삼스레 우리 주변에서 많은 것을 새삼스레 보게 하는 지혜로 바뀌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