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47)

2007.05.08 09:38:14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넷째는, 장기 근무자들에 대한 순환보직 문제다.

 

각 세무서의 기사님, 수위아저씨, 지방 세무서 여직원 등이 주로 여기에 해당됐다. 특히 지방에 가보면 한곳에서 10년, 20년을 근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었지만 그들 중 일부 직원은 장기근무를 기화로 터줏대감 노릇을 하면서 전·출입이 잦은 간부들이나 직원들을 무시하고 지방유지 행세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납세자와 유착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해 전국적으로 한곳에서 3년이 넘은 기능직과 5년이 넘은 일반직원의 인사이동을 대대적으로 단행해 분위기를 쇄신한 바가 있다.

 

감찰분야에 근무하는 직원 몇명도 여기에 해당이 됐다.

 

국세청에 근무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유독히 감찰분야는 업무의 특수성 때문인가?

 

모두들 일선으로 나가기를 꺼려했다.

 

원칙에는 예외가 적어야 한다.

 

결국 몇명은 지방청으로 이동하게 됐다.

 

그런 일이 나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오해한 때문인가?

 

감찰자료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박○○. 금품수수 성향이 강함'이라고.

 

세상에 참….

 

인사계에 근무하는 동안 직원 돈 한푼 받아먹었으면 벼락맞는다.

 

좀더 말할까요?

 

그만 참자!

 

사실 말이지 어느 누가 거길 가서 동료 직원들을 징계시키거나 옷을 벗기는 일을 좋아하겠는가?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국세청만큼 강력한 감찰기능을 발휘하는 곳 또한 드물다.

 

지금도 부조리 근절에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

 

근래에 한번 가봤더니 모두들 눈 코 뜰 사이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감찰부서 직원들이 할일이 없어 하품을 하고 있는 깨끗한 시절이 얼른 왔으면 한다.

 

다섯째는 상습적으로 청탁하는 자들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다.

 

나름대로 뭔가를 해야만 될 것 같았다.

 

어느 조직에서나 이런 미꾸라지 같은 직원은 있겠지만 과연 누가 상습적으로 청탁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의 명단이나 통계도 전혀 없다.

 

그것은 그들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인사계장이나 총무과장이 금방 승진해서 가버리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인수인계 사항에도 들어있지도 않고….

 

전임(前任) 인사계장들은 보통 6개월에서 1년만에 서기관으로 승진해 지방서장으로 나갔다. 나는 3년째 이 일을 보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승진기준에 들만한 평점관리가 제대로 안된 때문이기도 한데 어쩔 것이냐?

 

몇년간 메모한 나의 비밀장부(?)를 한번 분석해 봤다.

 

중복되는 이름만 잘 찾아보면 된다. 정확히 30여명이었다.

 

이들을 모아 한꺼번에 조질까?

 

아니면 개별적으로 불러 혼을 내줄까?

 

그네들의 체면도 좀 생각을 해야지….

 

이튿날부터 정도(程度)가 심한 순으로 한사람씩 불러들였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해줬다.

 

"당신은 어느 부처(部處)의 직원이냐?"

 

"나도 9급으로 시작한 당신하고 똑같은 처지야, 직장선배로서 말하는 것이니 오해 말고 들어요!"

 

"평소에는 농땡이로 일관하다가 인사때만 되면 그분을 찾아가서 청탁을 하냐? 그것도 맨손으로 그냥 찾아가느냐? 국세청 망신을 당신이 몽땅 시키고 있잖아!"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그 친구는 가금씩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성실한 직원들은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당신은 거기만 잘 관리하면 어디에든 맘대로 갈수 있었지? 그게 바로 미꾸라지 같은 행동이야! 잘 생각해봐. 국세청 직원 모두가 당신 같으면 어떻게 되겠나?"

 

"지금부터는 절대 안돼! 내가 용서치 않겠어! 만약 한번만 더 그러면 그분과 자네 이름을 '국세지'나 '○○신문'에 발표를 해버릴거야! 알았어요?"

 

그러고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약속으로 각서(覺書)를 받아놓았다.

 

그러고 난 후 얼마 있다가 청장님께서 인터폰으로 들어오라 하셨다.

 

이들을 모아 한꺼번에 조질까?
아니면 개별적으로 불러 혼을 내줄까?
그네들의 체면도 좀 생각을 해야지….
이튿날부터 정도(程度)가 심한 순으로 한사람씩 불러들였다.

 

업무노트를 얼른 챙기고 입을 떠억 벌려 담배냄새를 제거하려고 향수 스프레이를 칙칙 뿌리고 나서 청장실을 향해 바쁘게 걸어갔다.

 

청장님은 담배 냄새를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요 근래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닙니다.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왜 '○○부장'을 신문에 낸다는 것은 무슨 말이요?"

 

나는 그동안 있었던 내용을 말씀드렸다.

 

청장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시원하게 잘했네"하시며 격려를 해주셨다. 청장님의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좀더 파급효과를 기대하면서 세정신문 '삼면경(三面境)'지면을 빌려 그 사실을 보도했다.

 

'상습청탁자 혼쭐나! 30여명 인사계장에게 불려가'라는 제목으로.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다음 인사때는 청탁인원이 엄청 줄었다.

 

여섯째, C청장님께서는 예산 확보로 출장비 등 각종 수당을 올리는 한편, 예산이 없이, 즉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직원의 사기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라 하셨다.

 

기획관리관실과 협력해 우선 직원의 호칭문제를 바꿨다.

 

일제(日帝)시대때부터 그때까지 쓰던 '서기', '주사'는 직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미흡해 직원들 사이에서도 부르기를 꺼려했다.

 

납세자들도 그렇게 부르려 하니 세무공무원을 좀 비하하는 것 같아 주저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호칭을 '조사관'으로 바꿔 부르도록 하였다.

 

간부들이 직원의 명함을 직접 만들어 주면서 격려도 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쓰고 있던 호칭을 금방 바꿔 부르기가 어색했던 것 같았다.

 

한동안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서 나는 '세무인 명단'을 만드는 조세관련 신문사에 절대로 직급표기를 하지 않도록 부탁을 하고, 또한 세무서에서도 '직원배치도'등을 만들 때에 서기, 주사, 6·7·8급 등의 용어를 절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지시했다.

 

그리고 자기 이름 뒤에는 반드시 "조사관입니다"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 뒤부터 "박 주사", "김 서기" 듣기 싫던 명칭이 세무공무원이나 납세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조사관' 호칭이 일상화됐다.

 

일곱째, 세무대학 출신들의 관리문제이다.

 

세무대학 출신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전원 8급 공무원으로 임용하고 일선서에 배치를 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졸업만 하면 무조건 임용을 해왔기 때문에 일부 졸업예정자들은 아주 문제가 많았다.

 

졸업하기 전에 한달동안 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세무실무 교육과정에서 일부는 음주, 지참, 결석, 산만한 수강태도 등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 일부는 면접시험에 임하는 언행(言行)도 불성실하기 짝이 없었다. 명색이 면접시험인데 세수도 하지 않고 오는가 하면 심지어 면접관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거만한 태도를 취하는 녀석도 있었다. 자기가 무슨 '마이클 잭슨'인가? 머리에는 무스로 떡 칠하고.

 

"영업권이 무엇이냐?"하면 "영업을 할 수 있는 권리"라 하고, "채권이 뭐냐?"고 물으면 "돈을 빌릴 수 있는 권리"라 했다.

 

나는 기본(基本)이 되지 않아 도저히 임용할 수 없는 학생은 과감하게 탈락시켜 기강을 잡아야 한다고 면접관에게 주지를 시켰다.

 

그해 처음으로 2명의 낙제생을 배출했더니 세무대학에서 난리가 났다. 그러나 다음해부터는 이발하고 복장단정한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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