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내가 총대 메자
제법 큰 회사에 상무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용건을 말하기 전에 먼저 국세청 수위들이 문제가 많다면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식식대고 있었다.
청에 올 때마다 그렇다고 하면서….
나도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청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1차로 거수경례, 2차로 엘리베이터에서의 과잉친절, 3차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노골적인 언행 등등.
봄·가을 소풍간다고 각 서(各署)에 회람을 돌리는가 하면 가끔씩 세법이나 세무관련 서적도 강매한다.
청장님 출근시간 때만 정복입고 금테모자 쓰고 거수경례 딱 한번하고 나면 간부 목욕탕, 그리고 구내 이발소. 두 다리 쭉 뻗치고 머리감는 두 아줌마 모두 동원해 안마시켜놓고 드르렁 드르렁!
팔자 한번 늘어졌다.
본청, 지방청, 세무서의 모든 수위들에게 군림하면서 마치 자기 졸개처럼 부려먹는다.
옥황상제도 별게 아닌데 일선 세무서 과장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수위장 Y의 모습이었다.
나는 더이상 묵과해서는 국세청이 크게 망신당할 사건이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본청과 일선 세무서의 직원, 출입하는 납세자, 심지어 수위들 사이에서도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좋은 게 좋다고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우리 총무과도 문제였다.
바로 총무과장과 인사계장이다.
승진해서 나가면 그만이라고 그냥 덮어두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못 본다.
이번 기회에 최소한 좀 정신을 차리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Y를 조용히 불러서 사표를 써오라했다. 그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면서 '어따 대고 함부로'라는듯 나를 노려보다가 그냥 홱!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이튿날.
K비서관이 구내전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청장님이 출근하시는데 Y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따라 들어와서는 인사계장에게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일이 있느냐고 청장님에게 따져 물으면서 계속 더 근무하고 싶다고 했단다.
그의 돌출행동에 청장님은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집무실로 들어가셨다고 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지…'
나는 즉시 Y를 불렀다.
"왜 사표를 안 써와요. 지금 당장 갖고 오시오!"하고 재촉을 했다.
"청장님이 무슨 말씀 안하십디까?"
"예 말씀하십디다."
"뭐라고 하십디까?"
"예 사표를 받아라 하십디다."
나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그래요?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고는 나가더니 이리저리 유임청탁을 하며 돌아다녔다.
오후에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 일반직원들은 오십육칠세가 되면 명예퇴직이다 하여 모두 그만두는데 별정직도 예외를 둘 수 없지 않느냐?"
"그리고 Y님은 60세가 넘었으며 다른 분에게도 수위장의 길도 좀 열어줘야 하는 것이 순리잖습니까?"라고 말해줬다.
그는 총무처 수위장도 지금 나이가 62살 임에도 계속 근무하는데 자기도 1년만 더 근무하도록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사실 수위장은 별정직으로 정년이 없었다.
그것은 수위장의 업무능력에 따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년규정을 두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것을 역이용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어제의 거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안됩니다."
참 힘든 일이었다.
후임을 정하는 것도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팔자 한번 늘어졌다.
본청 지방청 세무서의 모든 수위들에게 군림하면서 마치 자기 졸개처럼 부려먹는다.
옥황상제도 별게 아닌데 일선 세무서 과장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본청, 서울청 수위님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나서 여러분들이 새로운 수위장을 추천하라고 했다.
그들은 두 사람의 명단을 가져왔다.
O는 경력은 최고참이고, K는 경력은 그 다음이지만 수위장감으로 적격이라고 추천을 한다. K가 선정이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K는 나와 면(面)까지 같은 동향인이라 나간 수위장 Y와 떨어진 수위 O의 오해를 많이 받았으나 다른 모든 수위님이나 직원들은 K가 수위장이 된 것을 모두 반겼다.
그 당시 본청에는 또 한사람의 꼴통이 있었다.
일선 근무때 만나 알고 있던 납세자를 일전에 만났더니 본청 국장님 K씨를 잘 알고 있다고 폼을 잡았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비상계획국장' K라고 한다. 기능직이 국장 행세를 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었다.
이 친구 하는 짓거리 또한 가관이었다.
전 수위장 Y가 하는 행동에다 몇가지가 더 추가된다.
을지연습이 끝나면 유공자에게 표창을 하는데 K가 또 추천돼 왔다.
그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지금까지 수십번이나 표창을 받고 부상으로 시계를 가져간 사실을 알고 올해는 그를 표창에서 제외시켰더니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항의해 댔다.
구내 이발사를 국세청 직장예비군에 편입시켜 놓고 공짜로 이발하고 안마를 받고 있는데 보다 못한 이발사가 항의를 하니 지역예비군으로 보내버렸다고 이발사가 하소연한다.
예비군에 편입돼 있는 우리 직원들 모두도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구청(區廳)에 우리 직원을 보내어 국세청 예비군 업무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한마디로 이빨을 갈고 있었다.
나는 K에 대한 그이상의 것은 나의 소관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우선 비상계획 담당관님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물러섰다.
나중에 보니 지방으로 전보가 돼 있었다.
55. 구세주 정 회장님
나의 인생에서 경제적인 구세주이셨던 정 회장님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前)인 '82년도이다.
집안 형님이 명동에 있는 유네스코회관 1층에서 복지(服地)장사를 크게 하고 있었는데, 형님의 사업자금을 대어주신 인연으로 그 어른을 거기서 처음 만났다.
이북 출신으로 1·4 후퇴때 내려와서 갖은 고생과 노력으로 끝내는 성공을 하신 분이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님과도 같은 고향이라 친분이 두터우셨다.
그분은 특히 사업이나 금전문제에서 철두철미한 것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남한에 내려와 사업을 시작하려니 제일 무서운 것이 '세금'이었단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결정한 것이 세금과 가장 관련이 적은 사업이 바로 농사를 짓는 것이라 결론을 내리고 인삼경작을 시작했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