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가 전경(前景)이 되지 않을 때

2026.02.27 10:38:04

게슈탈트(Gestalt)는 독일어로 ‘형태’ 또는 ‘전체적인 모양’을 의미한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이 개념은 단순한 모양을 넘어선다. 그것은 “부분들의 합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전체”를 뜻한다. 우리는 세상을 조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여러 자극을 따로따로 보기보다 그것들을 하나의 장면처럼 묶어 이해한다. 이것이 게슈탈트 심리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하나의 장면으로 묶어 볼 때 그 안의 모든 요소가 똑같이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전체를 보지만 그중 일부를 더 또렷하게 바라본다. 나머지는 뒤로 물러나 흐릿해진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이처럼 전체 속에서 무엇이 중심이 되고 무엇이 뒤로 물러나는지를 ‘전경(前景, figure)’과 ‘배경(背景, background)’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전경과 배경은 일상의 경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노트북으로 작업할 때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보통 두세 개 이상의 창을 동시에 열어 두기도 한다. 문서 파일, 인터넷 창, 메신저 화면이 겹쳐 있다. 그러나 화면에 세 개의 창이 떠 있다고 해서 모든 창을 동시에 또렷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정 창을 클릭하는 순간, 그 창이 앞으로 나오고 나머지는 뒤로 밀려난다. 앞에 나온 창이 전경이 되고 뒤에 있는 창은 배경이 된다.

 

우리의 인식도 이와 비슷하다. 한 순간에 수많은 자극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중 일부만을 전면으로 끌어올려 생각한다. 전경은 지금 우리의 주의를 차지하고 있는 대상이고, 배경은 뒤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나머지 요소들이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를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친구의 목소리가 전경이 된다. 그러나 갑자기 큰 걱정이 떠오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순간 걱정이 전경으로 올라오고 친구의 이야기는 배경으로 밀려난다. 우리는 더 이상 친구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바로 이 전경과 배경의 역동적 전환에 주목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같은 강도로 느끼지 못한다. 마음의 앞자리에 무엇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서는 달라진다. 걱정이 앞에 나오면 행복감은 줄어들고, 좋은 생각이 앞에 나오면 행복감은 커진다.

 

문제는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이 전경을 차지할 때다. 그 순간 눈앞의 현실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걱정이나 불안이 현실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 종종 보던 장면이 있다. 어떤 학생이 영어 시간에는 수학 문제를 풀고, 수학 시간에는 영어 단어를 외운다. 겉으로는 수업을 듣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학생의 전경은 눈앞의 수업이 아니라 다른 과목이다. 영어 시간에는 수학 문제가 전경이 되고 영어 선생님의 설명은 배경으로 밀려난다. 그 학생에게 ‘지금-여기(Now & Here)’, 즉 영어 시간은 전경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의 시간에 앉아 있으면서 다른 업무를 걱정하고, 가족과 식사하면서도 직장의 문제를 떠올린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눈앞의 장면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걱정이 되는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가 전경을 차지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미해결 과제’가 전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미해결 과제란 정리되지 못한 감정과 경험을 말한다. 과거의 갈등,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 말하지 못한 감정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마음속에 남아 있다가 기회가 되면 다시 전경으로 떠오른다.

 

걱정이 많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걱정은 ‘지금-여기’를 또렷한 전경이 되지 못하게 한다. 현재의 대화, 현재의 업무, 현재의 휴식은 흐릿해진다. 우리는 겉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걱정이 전경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행복은 미래의 완벽한 조건에서 오는 보상이 아니라 지금의 경험을 온전히 느낄 때 스며드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게슈탈트 치료에서 강조하는 개념이 바로 ‘지금-여기’다.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만 일어난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고 미래는 상상 속에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알아차림(awareness)’이다. 알아차림은 판단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이 전경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지금-여기’가 전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미해결 과제가 남아 있어 걱정이 마음을 붙잡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삶은 언제나 ‘지금-여기’라는 형태로만 존재한다.

 

행복은 모든 걱정이 사라진 뒤에야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여기’가 또렷해질 때 조용히 스며드는 감정이다. 삶의 질은 지금-여기가 얼마나 자주 전경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윤형하 기자 windy@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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