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채규(徐彩奎) 本紙 편집주간
최근 들어 국세청 세무조사 향방에 대해 사업자들의 관심도가 뜨겁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강도를 부쩍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무조사 공포시대?'
세무조사와 관련 타산지석이 될만한 노변야담을 한번 들여다 보자.
'79년은 세무행정의 상당부분이 조용한 개혁을 맞는다. 전년 12월에 취임한 김수학(金壽鶴) 국세청장이 지방행정가 출신답게 규제성격이 강한 세정실무를 과감하게 없애고, 대신 세무조사의 강도는 훨씬 강하게 운용한다. 이에 따라 연합조사반이 해체되고 국세청 직제가 실무기능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개편된다. 징세국과 심사국이 '징세심사국'으로 통합되고 '물가조사과'가 '조사과'로 바뀐다.
따라서 세무조사는 어느 때보다 상대적으로 강하게 집행됐다. 세무조사를 독려하는 방식은 실적 위주로 운영되고, 세무관서별·개인별 실적은 인사에 반영됐다. 그래서 일선 관리자들이나 직원 너나 할것 없이 이 조사분야는 눈에 불을 켜는 업무가 될 수밖에.
당시 영등포세무서는 서울시내뿐만 아니라 전국을 통털어서 세수규모가 열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컸다. 관내에 OB·크라운 등 대형 맥주공장과 해태·롯데 등 대형 제과공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래동 주변으로 형성된 150여개 철강 도매상들이 세수에 많은 기여를 했다. 말이 도매상이지 도매상마다 거래규모는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웬일인지 '79년도에는 이들 철강 도매상의 부가세 신고내용이 영 형편없었다. '77년 부가세제 도입으로 세부담에 위협을 느낀 철강 도매상들이 자생단체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부가세 '담합신고'를 한 것이다.
A영등포서장은 도매상 대표들을 만나 수정신고를 해달라며 갖은 설득을 해 봤으나 도무지 먹히질 않자 그해 12월초 비장한 결심을 한다. 바로 외형이 큰 도매상 5개를 골라 강력한 '경정조사'를 부가세과에 지시했다. 다음해 1월 부가세 확정신고 등을 염두에 둔 다목적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런데 매일 올라오는 복명은 영 신통찮아 속만 태우길 20일. 마냥 그 조사에 직원들을 묶어둘 수도 없는 일이어서 이제 '철수'를 해야겠다고 맘먹고 있던 A서장은 어느날 오후 퇴근 무렵 부가세 과장으로부터 다급한 보고를 접한다.
"서장님, 큰걸 잡았습니다."
조사 중이던 한 도매상의 비밀장부를 찾았는데, 그 내용이 '물건 중의 물건'이라는 보고였다. 그 비장에는 철강의 무자료거래 루트는 물론이고 실거래 규모까지 유리알처럼 드러나 있었다. 그 비장을 분석하자 관내 철강도매상들의 탈세사실이 고구마 뿌리 올라오듯 줄줄이 따라나왔다. 결국 세무서 전체 세수에 엄청난 실적이 올라간 것은 물론 당시 업무실적에서 최상으로 평가받던 조사실적 'A+'을 획득한다. 얼마 안가 서장은 물론 부가세 과장, 담당직원이 뒷날 줄줄이 승진과 영전의 단맛을 맛본다.
그러면 20일 가까이 조사를 해도 찾지 못할만큼 꼭꼭 숨어있던 비밀장부를 어떻게 찾았을까. 답은 한마디로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구나'할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어? 이 밑으로 들어갔는데…."
동전 하나가 조사반장이 앉아 있는 소파밑으로 떼르르 굴러 들어간 것이다. 반장은 얼른 일어나 소파 밑으로 손을 넣고 문제의 동전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동전 대신 서류뭉치가 잡혔다. 순간적으로 '이거다' 싶어 꺼내보니 지금까지 그토록 눈을 부릅뜨고 찾았던 비장부가 아닌가.
"이건 뭡니까?"
조사반장은 반원과 함께 소파를 들어올렸다. '특급물건'들이 우수수 나왔다. 새파랗게 질린 도매상 사장의 항거는 '사흘 굶은 사자가 먹이를 움켜쥔' 조사직원의 기(氣)에 눌려 이내 살려달라는 읍소로 바뀌었다.
숨은 '공로자'는 커피를 배달온 다방 레지와 여자 경리직원. 조사를 마무리하는 마당에 사장이 조사직원들에게 '석별의 차 대접'을 하기 위해 다방에 커피를 시켰고, 커피값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동전이 떨어져 이같은 '행운'과 '불상사'가 교차발생한 것이다. '만사불여 튼튼'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한 말 아닌가 싶다.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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