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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이행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선진국의 경우 길게는 약 100년에서 짧더라도 최소한 40∼50년 정도는 소요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기간이 약 2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40여년간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노령화 추세가 다시 한번 선진국을 뛰어넘어 이미 '초과달성'의 눈부신 성과(?)를 거뒀고, 앞으로도 상당기간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듯하다. '빨리 빨리' 문화가 비단 우리 생활습성에만 머물지 않고 노인국가로 진행하는 데 있어서도 과속운전의 멋진 솜씨를 뽐내고 있다.
인구의 노령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의학 및 의료서비스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장수비율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청소년층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도 고령사회로의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2003년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노령화가 빨리 진전돼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보다도 더 낮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고령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노인사회, 즉 고령사회가 전개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 것인가?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대신 생산가능 연령인구가 줄어든다. 이는 곧 적은 수의 인원이 많은 수의 노인을 부양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 생산가능 연령인구가 감소하고, 노동공급이 부족해지며 취업인구가 노령화되면서 경제성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셋째, 소비성향은 높지만 소득수준이 낮아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은 노인인구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소비지출 여력이 둔화된다. 넷째, 퇴직후의 생존기간이 길어지고 노인인구의 비중도 증가하면서 노인복지 및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팽창한다. 이는 각종 복지정책과 관련해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다섯째,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수명연장 및 출산율 저하에 따라 절대인구가 감소하면서 경제성장이 저해된다.
현재와 같이 인구가 급격히 노령화되고 극단적인 저출산 추세가 지속되면 결국에는 인구와 노동공급이 함께 감소하면서 저성장 또는 경제가 퇴보하는 현상까지도 예상된다. 물론 그런 상황은 최소한 20∼30년후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미리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원활한 노동공급과 노인국가 시대의 복지사회 구현을 위해서는 그만큼 정부의 역할, 그중에서도 특히 재정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조세체계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소득세는 누진과세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함으로써 분배구조를 개선시키는 기능이 있다. 경제위기이후 소득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소득과세의 중요성이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소득세는 본질적으로 노동공급을 왜곡시키는 등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부정적인 효과도 함께 동반하고 있다. 노동공급이 심각하게 부족해지는 고령사회 또는 초고령사회에서는 왜곡적인 소득세가 성장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2040년경에는 생산가능 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정도로 생산가능 인구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하에서 소득세를 과도하게 부담시키는 것은 가뜩이나 부족한 노동공급을 더욱 위축시켜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소득원천도 점차 비중이 줄어드는 생산가능 연령인구에 집중됨에 따라, 소득세의 재분배 효과보다는 왜곡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소득세의 주된 대상이 되는 생산가능 인구가 축소되는 상황하에서는 소득세보다는 재정지출을 통해 재분배를 달성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선진국에서도 이미 그러한 방향에서 재분배 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령사회에서는 왜곡적인 소득세의 비중을 줄이고, 대신 소비과세와 재산과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세원이 고르게 분포돼 있고 소득세에 비해 탈세의 위험이 현저하게 낮은 소비과세의 비중을 높이면 세부담이 특정집단에만 집중되는 왜곡현상을 줄이면서 동시에 재정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 부나 재산의 분포는 중·장년 및 노년층에 집중돼 있다. 그러므로 재산과세의 강화는 생산가능 인구의 부담을 증대시키지 않으면서, 부담 여력이 있는 계층에 부담을 지움으로써 초과부담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소득세도 연금과세 정비를 통해 세부담의 형평을 기하는 한편, 저출산 방지 및 여성 유휴노동력의 공급을 확대할 수 있도록 출산·육아와 관련된 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노동공급 왜곡효과를 낮추기 위해서는 한계소득세율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도록 하면서 최고세율도 경쟁국과 비교해 높지 않게 유지해야 한다.
고령 사회로의 진입은 불가피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체질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조세체계도 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변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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