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인간숭배

2005.10.13 00:00:00

정양섭 세무사·한국순수문학회협회장


 

희랍 소피스트의 대표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했다. 인간은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오로지 감각으로 인식하고 각자의 주관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똑같은 개념은 어느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자체가 판단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인간에 관한 상태나 모양, 특히 이성(理性)이나 도의(道義)에 관한 모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사람을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선한 인본의 바탕위에서 가꿔진 훌륭한 인간성과 아름다운 인간미에서 비롯된다. 인간성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성질을 말하고 인간미는 다른 사람에게 풍겨주는 사람다운 맛을 말한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으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산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로서 순수한 이성과 지성만이 파악할 수 있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서 모든 사람들은 설혹 실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훌륭한 인간성과 아름다운 인간미를 갖춰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람의 틀은 아무나 갖출 수 없다. 그래서 그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옛날 성현이든 현존의 지도자든 선망의 대상으로서 인간숭배를 받게 된다. 인간숭배란 특정한 사람이나 그 사람의 정령을 신성시해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숭배는 바르고 보람있는 삶의 가치기준으로 귀감과 존경과 사숙의 대상이 되는 어떤 인물을 마음속에 모시고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20여년전부터 인간숭배의 대상 인물로 심중에 점지해 오늘날까지 숭배하며 따르고 있는 분이 있다. 국세청장을 역임한 후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추경석(秋敬錫) 전 장관이 바로 그분이다. 옛 말로 벼슬이 높았다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추 전 장관을 처음 뵌 것은 내가 광주지방국세청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공식석상에서였다. 그분이 이리세무서장으로 재임할 당시 그곳에 출장한 적이 있었다. 의례에 따라 인사와 출장목적을 말씀드리기 위해 서장실에 들었다. 우리 일행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어선 그분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나를 매혹시켜 버렸다. 후리후리한 키에 여유있고 늠름한 자태, 핸섬하고 귀티나는 얼굴에 과묵한 눈빛, 육중하면서도 심장까지 날카롭게 스미는 음성 이 모두가 한마디로 호남아의 기품이었다.

또한 부하들을 향도할 수 있는 위엄이 서린 가운데 직원들로 하여금 자기들 스스로가 중요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느끼고 참여의식을 갖도록 할 수 있는 인간상이 역력했다. 그야말로 민주적이며 인간적인 리더십이 철철 넘치는 분으로 느껴졌다.

내가 추 전 장관을 인간숭배의 대상인물로 점지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더욱 존경하고 따르는 수많은 사연중에 두어가지만 더 추가하기로 한다.

한가지는 자기발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입지전적인 분이었다. 어느 분야에서나 남을 앞서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직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본다. 그런데도 추 전 장관은 조용한 가운데 거듭되는 고속승진의 가도를 달렸다. 이는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원만한 대인관계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입지를 세운 사람에게는 너무나 훈시적인 교훈이다.

다른 한가지는 역대 국세청장 가운데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인사공정을 위해 가장 심혈을 쏟은 분이었다. 변화를 미리 예고하고 엄정한 감독하에 대처 내지 실천을 선도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조직과 직원들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문관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킴과 아울러 높은 위상으로 정립한 것은 한가지의 좋은 예가 된다.

어느 조직이든 인사는 공정해야 한다. 인사가 공정하지 못하면 그 조직의 목적과 기능이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인사만사(人事萬事)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추 전 장관이 국세청장으로 취임하기 이전까지는 국세청의 인사에 있어서도 '호남 푸대접'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이를 감지한 추 전 장관은 인사의 공정을 위해 단호히 인사탕평책을 실천에 옮겼다. 역대 국세청장 어느 누구도 감행하지 못한 발상이요, 쾌거라는 점이 나를 더욱 매료시켰다. 나도 분명 그 수혜자의 한 사람이다. 감사함과 고마움과 은혜로 간직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 다른 부처에서는 호남인재의 갈증현상이 나타났지만 국세청만은 오히려 남아돈다는 말을 들었다. 지역간의 균형을 이룩한 추 전 장관의 인사탕평책을 모든 국가기관 내지 사회조직에서 받아들인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지역감정이라는 말은 꼬리를 감추리라 믿는다.

누구에게나 인간숭배는 자기자신의 바르고 보람있는 삶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숭배의 대상은 자기의 인생관이나 가치 기준에 따라 각기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인간숭배를 하는 사람은 훌륭한 인간성과 아름다운 인간미에 점철돼 인간적인 사람에 이른다는 진리는 같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숭배는 어느 누구에게나 자기자신을 만물의 척도로 승화시키는 잣대가 될 것이다.

※ 졸고는 월간순수문학 2001년 6월호에 연재된 것이며 졸저 수필집 「아름다운 한국인」에 편집된 것임.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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