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군사정권 시절에는 특별담화발표가 많았다. 발표자는 주로 권력의 주변에 있는 기관들이다. 담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권력이 지향하는 목표를 실현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문제는 죄없는 사람, 선량한 국민들도 함께 놀라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찰은 뛰질 않는다고 한다. 경찰이 뛰질 않으면 범인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그러나 경찰이 뛰면 이를 보는 시민들은 무슨 사건이 터진 것으로 알고 놀라기 때문에 시민들의 마음의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 뛰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다운 민주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정의 민주화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해왔다. 우선 세무공무원의 친절한 자세가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납세자에게 베푸는 행정서비스가 어느 관청보다 신속하고 정확하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국민은 더 큰 만족을 원한다. 그것은 바로 조용한 세정을 바라는 것이다. 세정가(稅政街)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크면 국민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정관행으로서 남아있는 것 몇가지를 더 청산했으면 한다. 첫째, 납세자에 대한 특별관리 또는 특별조사의 큼직한 언론 홍보이다. 신고할 때가 가까워 오면 또 무슨 때가 되면 지금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언론매체와의 동반작전이 벌어진다. 이러한 활동은 불성실한 납세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좋은 효과도 기대하겠지만 선량한 납세자들은 자기를 겨냥한 특별관리인지,자기 사업이 특별조사 대상이 됐는지,그때부터 궁금증과 불안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심장이 조금 약한 사람은 아침에도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사연을 물어 본다. 자기도 여기에 해당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무사도 알 길이 없다. 상황만을 짐작해 얘기해 주고 다만 위안을 덧붙여 줄 뿐이다.
또 하나의 세정관행이 남아 있는 것은 영치(領置)행위다. 영치는 납세자의 동의를 받아 수색을 하거나 증거물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납세자의 동의를 받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사정은 그 동의를 거절하기는 매우 어렵다. 거절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사정 논리가 바로 강자와 약자의 속성이다. 만일 동의를 아니하면 법관의 수색영장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수색영장을 받아내려면 상응한 이유가 제시돼야 할 것이다. 집행 공무원의 입장에서도 그 이유가 궁할 뿐만 아니라 절차 또한 복잡해 적법한 절차를 피하는 방법이 바로 영치의 수단이다. 그러나 영치를 하는 경우에도 영치를 하는 이유는 일러줘야 할 것이다. 납세자가 그 이유를 물으면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라는 대답이 거의 전부이다. 이와 같은 특별관리, 특별조사, 영치 등의 행위가 새디즘의 심리적 반사작용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닌가도 분석해 볼 만한 일이다. 일반조사로서의 경정조사를 하는 경우에도 법률이 정한 경정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조사를 하는 것이 민주세제로서의 신고납세확정주의의 특징이라는 논지를 필자가 2000년7월20일자 본난을 통해 역설한 바 있다.
최근의 보도를 봐도 400여명을 특별조사해 몇백억의 세금을 거둬 들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이러한 성과가 영치의 효과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세정의 민주화를 담보하는 길은 법률의 실체적 규정보다 절차적 규정이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선진국일수록 절차를 중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미 제도로서 정착단계에 들어선 조사예고통지서나 납세자권리헌장을 제시하는 절차도 납세자의 마음을 편안케 하려는 취지라면 아직 관행으로 남아 있는 문제들도 하루 속히 시정하는 것이 국민과 더 가까운 자리에 함께 서는 길이라 생각한다. 영국의 경찰은 뛰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한번 음미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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