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세정의'에 관한 단상

2006.09.04 00:00:00

곽태원 서강대 교수


조세정의라는 단어는 조세정책을 논의할 때마다 등장한다. 조세개혁의 명분으로 조세정의와 관련된 언급이 빠지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정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상속세나 증여세를 더 무겁게 하는 것, 소득세의 한계세율을 더 높이고 누진도를 강화하는 것, 고가사치품에 대해서 중과세하고 부동산세를 무겁게 하는 것 등이 보다 정의로운 조세를 지향하는 구체적인 조치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글에서는 조세정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는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두서없이 떠오르는 단상들을 몇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우선 조세정의를 '억울하지 않은' 조세의 부담이라고 말하면 뜻이 통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의나 공평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정의되기 어려운 가치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개념들이기 때문에 억울함을 기준으로 정의한다고 해도 조세정의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납세자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은가를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며 이러한 생각들을 통해서 조세제도나 정책을 구체적으로 다듬어 나가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억울함은 대개 비교에서 온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억울함은 사정이 비슷한데 나 또는 우리만 세금을 더 낸다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월급쟁이들이 자영자들에 비해 세금을 더 낸다고 생각하고 억울해 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소위 수평적 공평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몇가지 포인트가 있다. 우선 이러한 불공평한 부담이 발생하는 원인에 직접 작용하지 않는 대책으로 대응할 경우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영자들이 세금을 덜 내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탈세 때문이다. 탈세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수평적 불공평을 제도를 통해 보완하려는 시도 때문에 조세정책이 오히려 더 왜곡되는 현상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탈세 때문에 나타나는 수평적 불공평은 탈세문제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해결해 가야한다.

수평적 불공평을 논할 때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제도상의 불공평이 시장의 자율적 조정에 의해서 시정돼 있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불공평을 바로잡겠다고 제도를 바꾸는 것이 오히려 불공평을 초래하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의의 문제는 담세력에 상응하는 부담이 이뤄지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담세력이 더 큰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책화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들이 뒤따른다. 무엇보다도 담세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가 큰 문제이다. 천부적인 잠재능력이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정의이지만 그것은 사실상 관찰이나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다. 소득이나 재산 등 이론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지표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서 어떻게 해서 담세력을 측정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담세력과 세부담을 어떻게 연결시키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하는 난제가 남아 있다.

납세의 억울함을 따질 때 간과되기 쉬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이른바 '조세가격'의 개념으로 볼 때 그 '가격'이 정당한가의 문제이다. 어떤 서비스 업체로부터 저질의 서비스를 받았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의 청구서를 받았다면, 그리고 그것은 강제적으로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조세정의의 매우 중요한 한 측면은 거래당사자인 국가와 납세자간의 거래의 정당성 또는 공평성의 문제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는 세금을 납세자들의 의무로 부과하는 대신 그것으로 납세자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내용과 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내가 납부한 세금의 가치보다 훨씬 적은 가치의 서비스밖에 받지 못한다면 그 납세자가 억울해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절차와 관련된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조세와 관련된 여러 가지 행정절차들이 공평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특히 불만이나 고충의 표출과 처리 등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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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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