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7)

2006.11.29 09:31:54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9.  sia 와의 만남 그리고, 상경

 

세무서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66년 2월 어느 날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목욕수건('이태리 타올'이라 했다)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목욕탕에 가서 쓰면 끝내준다는 누나의 말을 듣고 사용해 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탕안은 수증기가 자욱하다.

 

신기하게도 그 타올은 성능이 매우 좋아 온몸 구석구석을 힘 닿는 대로 문질렀더니 천년 묵은 때가 슬슬 잘도 나온다.

 

그러나 너무 무리한 탓인가? 피부가 벗 겨져 쓰리고 아프다. 특히 목 주위는 피가 맺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병원을 찾게 됐고 그때 주사를 놓아준 간호소녀 'Russia'(나는 '시아'라고 불렀다)를 만나게 된다.

 

"이제 병원에 오지 말고 약만 바르면 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아'를 보기 위해서 각종 핑계를 대면서 주사를 맞으러 갔다.

 

그리하여 아름답고, 귀여운 여학생과 대학 2년생 21세의 꿈 많은 '아담'과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었던 '시아'와 나는 틈만 나면 만났다.

 

눈 쌓인 동명 저수지 제방을 걷기도 하고, 팔달교 부근 울창한 밤나무 숲을 지붕삼아 누워 있기도 했다.

 

음악 감상실과 극장에도 가고, 어느 휴일에는 버스를 타고 약수터에 다녀오기도 했다.

 

철없던 시절 우리는 그렇게 4여년을 정말 아름답게 보내고 있었다.

 

'시아'와 만나고 난 후 1년쯤 됐을 때, 내가 세무서에 들어가게 됐다. 나는 그 사실을 한동안 '시아'에게 는 말하지 않았다.

 

뭔가 궁색하고 쪼들리는 것 같은 내 모습과 처지를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야간부로 옮기게 됨에 따라 세무서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를 만날 때마다 졸업할 때까지만 다니고 졸업하면 대기업에 들어갈 거라고 큰소리를 뻥뻥 쳐대었다.

 

지방도시 안동에서 근무하게 됨에 따라 학교는 야간부로 옮겨놓았는데 출석과 학점은 어떻게 해결하나?

 

그리고 또 '시아'는 어떻게 만나야 되나?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방법이 없으면 그 속담은 엉터리다.

 

출석은 친구가 대신했고, 학점은 시험이 있기 바로 전날 저녁에 대구로 올라와 친구의 노트를 빌려 벼락치기를 했다.

 

그러나 워낙 우수한 두뇌를 가져서인가?

 

성적 우수자로 몇학기 학비를 면제받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시아'를 만날 틈이 나지 않으니 그게 제일 큰 불만이었다.

 

안동에서 근무하던 시절은 참으로 바쁜 나날이었다.

 

자! 이제부터 '시아'는 물론, 월남편지 사건의 장본인인 '박상병'을찾아 나서자! 그래서 나는 주말이 되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를 타게 됐다.

 

'69년 2월 어느 날, 드디어 나는 졸업을 하게 됐다.

 

졸업식장에서 '시아'는 아주 예쁜 꽃다발을 내게 안겨줬고, 대신 나는 졸업장을 선물로 주었다.

 

'시아'는 어느 날 몸이 좋지 않다면서 서울에 있는 언니집에 다녀오겠다면서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벌써 여섯달이 돼 가는데 대구로 내려오지도 않고 소식조차도 감감이다. 이리 저리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렇게 소식을 딱 끊을 이유가 도무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가?'

 

'이제 만나기 싫어졌는가?'

 

'혹시 교통사고라도?'

 

이런 방정맞은 생각도 다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을 알고 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드시 만나야 하며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고향이 어디인지 어느 학교에 다녔는지 미리 알아둘 것을, 참으로 후회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언니의 이름과 언니 집이 서울 서대문구 녹번동에 한전인가 우체국인가 맞은편 산 쪽 어디에 있고 형부(兄夫)가 독립문 부근 무슨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들은 것이 전부이다.

 

자! 이제부터 '시아'는 물론, 월남편지 사건의 장본인인 '박 상병'을 찾아나서자! 그래서 나는 주말이 되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를 타게 됐다.

 

토요일,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서울 행 기차를 타면 밤이 늦어서야 도착하게 된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시아' 언니가 있는 녹번동과 박 상병의 주소지인 천호동 일대를 번갈아 가며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는 마지막 열차를 타고 다시 대구로 허탈하게 돌아오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주말 일과가 돼 버렸다.

 

너무나 어려웠고 힘이 들었다.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편지 한장이라도 없는가?'

 

'포기하지 말고 무조건 찾아야 한다'

 

결심을 하고 다음 주말이 되면 또다시 열차를 타게 된다.

 

일여년을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무언가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헉! 그럼 그렇지! 그런 생각을 왜 진작 못했을까? 이 멍청아.'

 

그길로 나는 지방청에 가서 서울로 좀 보내 달라고 신청을 했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로 서울로 발령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에는 쉽게 서울로 갈 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사연을 모르시는 부모님은 아들이 안동에서 대구로 또 서울로 출세해 간다고 기쁨이 대단하셨다.

 

'이제 좀 편하게 찾을 수가 있겠구나!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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