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9)

2006.12.06 09:43:31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11. 70년대의 재산세계업무

 

70년대 제산세계는 지금의 '양도소득세(讓渡所得稅)'와 같은 성격의 '부동산투기억제세(不動産投機抑制稅)'와 부동산매매, 임대업에 대한 세금의 부과징수업무와 의사, 변호사, 연예인 등에 대한 세무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부동산투기억제세]

 

부동산투기억제세(줄여서 '부투세'라 했음)는 그 당시에도 1세대1주택 비과세 조항이 있었다.

 

전산체제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관계로 자료처리를 위해 소유권이 이전된 거의 모든 양도자에게 '출서요구서'가 발부됐고, 입증서류는 전적으로 납세자가 제출하도록 했다.

 

그야말로 말을 잘 듣는 납세자만 억울하게 되는 그런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1주택이상 보유 여부 확인은 거주지와 본적지의 시·군·구에 '주택 보유상황 조회'로 판정했기 때문에 주소지와 본적지 이외 다른 곳에 수십채를 갖고 있더라도 빠져나가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재산조회 결과가 제때에 도달하지 않아 미결자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조세시효(租稅時效)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경제규모가 열악했던 시절이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2주택이상 보유자는 극히 드물었고 감사(監査)에 지적되어도 그리 큰 문제를 삼지 않았던 것 같다.

 

[부동산매매업]

 

부동산매매업에 대한 소득세는 그 당시 성북세무서의 주요 세원 가운데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70년대초, 서울 변두리 지역에도 서서히 개발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관할지역 중에서 특히 도봉구, 창동, 방학동 일대가 그러했다.

 

조상대대로 농사만 짓던 농민이 갑자기 값이 오른 땅을 팔아 부자(富者)가 되기도 하고 사기(詐欺)를 당하기도 했다.

 

전문 부동산 매매업자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었다.

 

그들이 하는 수법(手法)은 뻔했다.

 

매매업자들은 순박한 농민을 꼬드겨서 농지를 구입하고, 소유자의 이름으로 지목 변경, 택지분할, 그리고 주택을 신축해 실수요자에게 팔아넘기고, 자기는 빠져버린다.

 

오늘날 미등기 전매가 그들의 상용수법이었다.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하면 원래의 소유자 명의로 과세되고 매매업자는 우리를 비웃으면서 기쁨의 콧노래를 부르게 된다.

 

또한 8년 자경농지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농지의 경우에는 '부투세'까지 놓치게 된다.

 

나는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매매업자 '조○○'씨와 분양에 관여한 그의 처, 처남 등 3인을 똘똘 묶어서 공동명의로 과세를 한 기억이 난다.

 

3인 공동명의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본인명의로는 재산이 전혀 없어 고지(告知)를 해 봤자 전혀 실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재산을 부인과 처남 명의로 빼돌려 놓고 있었다.

 

"이것들이 이거 가짜형사 아이가!"

 

두 놈이 얼른 밖으로 튀어 나갔다.

 

나는 그들이 가져간 돈을 받기 위해 한 놈의 옆구리를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그의 처와 처남이 분양에 직접적으로 간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분양현장에 실수요자로 가장해 계약을 하는 척 해보기도 하고, 수많은 구입자들을 직접 만나 매매계약서를 입수하는 한편, 주변 복덕방에 술대접까지 하면서 그들이 분양에 직접참여하고 있다는 확인을 받아 '결의서'에 증거로 첨부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나는 매매업자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 됐다.

 

나는 청량리세무서로 이동을 한 이후, 거의 일년을 조씨의 폭언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통쾌했다.

 

[연예인 과세]

 

그 당시 내가 맡고 있던 종암동과 수유동에는 특히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기억나는 연예인으로 가수는 이미자, 남 진, 나훈아, 희극 배우로는 김희갑, 구봉서, 서영춘, 곽규석, 배우로는 최무룡씨 등이다.

 

그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은 서영춘씨였던 것 같다.

 

그는 처음 데뷔했을 때의 폭발적인 인기를 항상 못 잊어 하고 있었다. 구봉서·김희갑씨는 정말 지독한 구두쇠였다.

 

특히 구씨는 보신탕을 엄청 좋아했는데 그에게서 한번의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다섯번을 사야 했다.

 

나훈아는 체납세를 많이 남겨 놓고 공군에 입대해 버렸다.

 

그의 매니저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부' 주관으로 구성된 연예인 위문단이 월남에 자주 위문공연을 가곤 했는데 출연료는 거의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출연료 없는 공연 없다'는 소신에 따라 참가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그런건지 야간업소 출연 자료가 한꺼번에 통보돼 과세되는 바람에 체납이 된 것이다.

 

그는 그걸 정리하지 못한 채 공군에 입대를 해버렸다. 나는 체납세 정리를 위해 수유리에서 종암동 산동네로 이사간 그의 아버님을 찾아가기도 하고, 면회를 가기도 했다.

 

그의 매니저와 같이 자개로 된 가구와 승용차를 팔아 체납에 충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아마 지금까지도 나를 정말 지독한 세무공무원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12.  몽타주로 사기꾼 잡다

 

그날도 성북세무서 옆 다방에서 가수 나훈아의 매니저를 만나 체납세금 중 일부인 30만원을 분납(分納)으로 받아 영수증을 끊어주고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이상하게생긴 세 사람이 다짜고짜로 나를 청사 뒷골목으로 데리고 갔다.

 

"서정쇄신이야!"하면서.

 

뒷골목에 가보니 일당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영업용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뭣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고 무조건 택시 안으로 몰아넣었다.

 

"시경으로 갑시다."

 

택시 안에서 앞자리에 앉은 고참이 조금 전에 받은 체납세 30만원과 현금 2만원을 압수한다며 공무원증과 함께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마구 윽박질러 댄다.

 

"그 돈은 체납세를 받은 겁니다. 여기 영수원부도 있어요."

 

아무리 얘기해도 막무가내다.

 

오히려 옆에 앉아 있는 놈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앞에 계시는 반장님에게 빌어! 임마!"

 

나는 시경에 도착하면 거기에 근무하고 있는 외삼촌에게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자코 있었다.

 

그 당시 남대문 부근에 있던 시경에 도착했으나 그들은 사무실에는 가지 않고 뒷편 골목에 있는 다방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나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로 들어가시지요"라고 했더니 한 녀석이 귓속말로 봐주는 척 코치를 한다.

 

"너 거기 들어가면 진짜로 죽어!"

 

"반장님에게 잘 봐달라고 사정해봐."

 

조금전까지 그렇게 고함을 쳐대더니 갑자기 소곤거리는 것도 이상해서 나는 공무원증을 좀 보자고 했다.

 

뭔가를 얼른 보여주며 지갑에 넣으려 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재빨리 빼앗아 버렸다.

 

세상에 가짜 형사들도 다 있었다.

 

나는 다방에 있는 손님들이 들으라고 크게 소리를 쳤다.

 

"이것들이 이거 가짜형사 아이가!"

 

두 놈이 얼른 밖으로 튀어나갔다.

 

나는 그들이 가져간 돈을 받기 위해 한 놈의 옆구리를 꽉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조금 있더니 반장이라 하는 놈이 들어와서는 가져간 돈과 공무원증을 던지듯 돌려주고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한다.

 

"당신 운이 좋은 줄 알어.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오늘은 그냥 보내준다. 앞으로 우리 보거든 아는 체 하지 마셔!"하고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미친놈들, 누가 운이 더 좋은지도 모르고….

 

일진이 나빠도 더럽게 나쁜 하루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즉시 나는 그들의 인상착의를 생각하며 몽타주를 그렸다. 각 과로 공람을 시키고 복사를 떠서 현관 게시판에 붙여놓았다.

 

몇달이 지났을 때다.

 

같은 계 직원 '김○○'형이 지난번 몽타주와 비슷한 놈들이 옆 다방에 와 있다고 했다. 가서 확인해 보니 그놈들이 틀림없었다.

 

'옳지 복수다. 이놈들!'

 

우리는 신문지를 만원짜리 크기로 잘라서 봉투에 넣은 다음 김형은 직원으로, '오○○'형은 납세자로 가장해 옆 다방으로 가서 그놈들이 잘 보이는 옆자리에 앉았다.

 

가짜 돈봉투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직원으로 가장한 김형이 마지못해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다방을 나오는 순간, 그들이 김형을 콱 낚아 채면서 "서정쇄신이야!"라며 전에 하던 수법 그대로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미리 연락을 해둬 잠복하고 있던 성북경찰서 형사들이 그들을 붙잡았는데 한 놈은 도망을 가버렸고 두 녀석은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신문지로 만든 두툼한 가짜 돈봉투가 들어 있었다. 70년대에는 우리의 감찰을 대신해 이런 가짜 놈들이 더 설치고 다녔다.

 

경찰정보원 출신이라는 그들을 잡는 데는 나의 그림 솜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화가(畵家)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는 전국학생 미술 실기대회에 나가서 국무총리상까지 받은 몸이다.

 

그런 나의 주특기를 상업학교로 가는 바람에 제대로 살리지를 못해 못내 아쉬웠다. 지금도 내가 낚시를 다니는 이유는 붕어가 안 나오면 스케치 북을 펴놓고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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