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회예산심의와 늦장처리

2007.01.02 10:38:21

박정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가뜩이나 늦어진 예산안 처리가 구랍 22일 저녁 몇몇 여당의원의 실수로 중요 예산부수법안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부결됨으로써 작년에 이어 연말 임박통과가 불가피하게 됐다. 법안에는 연말에 닥치는 조세감면 마감을 연장해 주는 내용이 들어 있어 이것이 통과되지 않으면 해당 기업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된다. 한번 표결한 법안은 같은 회기내에는 다시 처리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법안을 연내에 통과시키려면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야 한다. 이미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을 넘겨 임시국회가 한차례 열린 터에 여당의 어이없는 실수로 또다시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편법이 불가피하게 됐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회의 역할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독자적인 정보력과 정책 전문성이 결여된 의회가 헌법에 보장된 권능을 제대로 행사하기에는 역부족이 될 수밖에 없다. 의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는 많은 정치·사회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는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인한다. 현대 정치에 있어서 행정국가화 현상이 진행되면서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알렌 쉬크(Allen Schick)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정당정치의 강화, 복지국가화의 진전과 정부지출의 확대, 그리고 이익집단의 발호 등은 국회의 물적·인적 자원의 확충에도 불구하고 입법부의 독립적인 통제가 갈수록 어렵게 돼가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정부의 기능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전통적인 행정부와 국회와의 관계가 통제 위주에서 성과 제고를 위한 적절한 견제와 균형으로 전환되고 있다. 강력한 의회제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간의 권력분립이 엄격하지 않고 내각과 의회는 서로 협력하는 형태를 띠는 반면, 순수 대통령제에서는 반대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분립이 매우 엄격하다. 따라서 대통령제 하에서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예산과정 통제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의회는 행정부와는 별도로 예산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려고 하고 예산과정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한다.

 

예산과정에 있어서 의회의 역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의 정부와 의회간의 관계는 전통적인 의미의 통제와 간섭이라기보다는 발전적 거버넌스를 위한 협력과 견제의 균형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의 메가트랜드는 기존 시간과 공간의 틀을 깨는 글로벌 시장의 출현, 정치 이데올로기의 극한대립 약화 및 다양화 등으로 요약되는 정치분야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를 내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유비쿼터스 시대에 펼쳐지는 메가트랜드가 근본적 환경변화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에 부응하는 입법부의 예산관련 역할 전환이 기대되는 것이다.

 

정치의 수단과 목표 및 활동 장(場)의 변화, 정치 행위자들이 벌이는 게임과 그 결과의 변화, 정치행위자의 성격과 형태의 변화를 감안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배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수요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증가하고 나아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과의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와 행정의 연계가 가속화되고 시민사회가 정치와 행정의 영역속에 침투하게 될 전망이므로 의회도 사안에 따라 공동 발걸음을 요구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정치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인적·물적, 그리고 제도적 자원의 충실화가 필요조건이라는 점이다. 예산심의에 임하는 의회문화를 바꾸고 예산정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나라살림을 지키고 나라정책을 길잡이하는 국회의 위상 정립과 국민으로부터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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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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