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빽 한번 써봐" (17)

2007.01.11 08:45:06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24.  김 과장님 그만 좀 웃겨요

 

을지로에서는 법인세과의 K과장님이 지금도 제일 기억이 난다.

 

그분은 선이 굵고 호탕해 매사를 두루뭉실 어려움이 없었다.

 

한마디로 낙천적으로 인생을 사셨다.

 

70년대 국세청에도 여자배구팀이 있었는데 응원단장을 할 만큼 리더십도 강했다. 그분과 어울려 거의 매 주말에는 등산을 다녔다.

 

'일출산악회'로 기억하는데 그는 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마이크를 잡는다. 그분의 '와이담'이 시작되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듣기 거북한 소재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여자분들은 처음에는 항의도 하지만 그분은 끄덕도 안한다.

 

처음에는 그러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산악회에 나오는 여자들도 많았다.

 

근무시간에 모든 잡지책을 탐독해 주말에 발표할 우스갯 소리를 수집하는 것이 그분의 제일 큰 일과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여기에 그분의 와이담을 소개하지 않으면 화를 내실 것 같아 한가지만 소개하겠다.

 

여자관계에서 제일 좋은 외도의 순서로 '1婦 2婢 3寡… 7妻' 순이라고 서두를 시작한 그는 이렇게 여성편력을 하다 보니 그 중에는 돈을 요구하거나 결혼하자고 달려드는 경우가 많아 골치가 아팠답니다.

 

그래서 말 못하는 벙어리와 사귀면 귀찮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답니다. 벙어리 처녀 구하기가 그리 쉽습니까?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발견을 하기는 했는데 또 꼬시기가 그리 쉽습니까?  그러나 그 분의 솜씨로는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데서 발견이 됐습니다.

 

퇴근시간만 되면 그 벙어리 처녀는 매일 사무실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퇴근하는 김 과장의 소매를 붙잡고는 손가락으로 여관간판을 가리키면서 "어 버버버 버버버…."

 

여관으로 가자면서 잡아끄는데 직원들 보기 창피해서 그만 헤어 졌답니다.

 

'옳지! 앞을 못 보는 장님은 귀찮게 굴지 않겠지….'

 

그래서 장님 아가씨를 또 꼬셔서 여관을 갔는데 도중에 일어섰더니 장님 아가씨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두드리며 더듬어 그걸 찾는데 옆에서 보기에 몹시 민망하더라나요.

 

말썽과 귀찮게 하는 염려는 없었으나 힘이 너무 들더랍니다.

 

그래서 좀 쉽게 편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통밥을 굴려보니 또 기똥찬 방법을 발견하게 됐답니다.

 

콜럼버스가 미국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은 희열을 느꼈답니다.

 

그것은 바로 꼽추 아가씨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서장님은 K과장이 제일 염려가 되어 보고서를 가져오라 해도 걱정 놓으시란다. 다 준비됐다면서.

 

학교 다닐 때 배운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면 힘이 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답니다.

 

반듯이 눕혀놓고 위에서 이마를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꼽추 아가씨를 찾아 나섰는데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나요.

 

그래서 그는 마이크를 입에다 대고는 큰 소리로 산행 나온 일행에게 혹시 꼽추를 보면 연락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었다.

 

산행을 다니는 우리 일행 중에는 중부의 Y서장도 자주 같이 다녔는데 그 분은 항상 자기의 6살짜리 딸을 데리고 왔다.

 

꼬마 따님 때문에 높은 산은 거의 가지 못했다.

 

K과장님에게 어떻게 좀 데려오지 않도록 해보라고 했더니 걱정 말라신다.

 

K과장은 산에서 꼬마와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열심히 노래를 가르쳤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아저씨로부터 배운 노래를 자랑하라고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했다.

 

그는 '나의 살던 고향' 동요가사를 바꿔 이렇게 가르쳤다.

 

'삼층 밑에 이층, 이층 밑에 일층, 일층 밑에 지하, 지하 밑에 남자, 남자 밑에 여자,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 다음주부터 Y서장님은 아이를 집에 두고 혼자 산에 오셨다.

 

아마 그날 집에서 엄마에게 노래자랑을 한 모양이다.

 

본청장님의 우리 서 순시일정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과장들은 업무보고 준비에 부산을 떨고 있는데 K과장님은 유유자적이다.

 

다음주에 발표할 이야기 소재를 찾느라 잡지책을 열심히 탐독하고 메모를 하고 있었다.

 

서장님은 K과장이 제일 염려가 돼 보고서를 가져오라 해도 걱정 놓으시란다. 다 준비됐다면서.

 

순시 당일.

 

K과장은 옛날에 만들어 놓았던 보고서를 연도만 바꾼 채 그대로 써먹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청장님은 "응 응, 그래 그래 잘 했구먼. 수고했어"를 연발하셨다.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을 하던 다른 과장은 청장님으로부터 꾸중을 많이 들었다.

 

옛적에는 국세청의 분위기를 만드는 그런 구수한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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