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해에 다시 생각하는 조세의 원칙

2007.01.11 09:46:16

곽태원 서강대교수

조세의 기본적인 두가지 원칙은 그것이 효율적이어야 하고 또한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효율성의 원칙은 대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크지 않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글로벌리제이션으로 정책의 효과가 바로 자원이 국제간 이동으로 나타나게 된 세상에서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조세의 파괴력이 매우 심대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정책당국자들이나 심지어 전문가들 사이에도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조세정책의 논의에서 더 많은 논란을 가져오는 것은 공평성 원칙이다.

 

공평하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조세정책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가? 특별히 공평하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고 오해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조세정책에서 공평성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두가지 기준은 편익원칙과 능력원칙이다.

 

그 중에서도 현대 국가의 조세정책에서 더욱 강조되는 것은 능력원칙이다.

 

능력원칙이라는 것은 조세부담의 능력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첫째로 담세력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소득, 소비, 재산보유 등 여러 지표들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개인이나 가구의 담세력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능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다시 말해서 천부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더 많은 소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많은 재산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많은 능력을 갖고도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즐기며 사는 길을 선택한 사람은 평생을 즐겁게 살아도 소득은 그렇게 많지 않을 수 있다.

 

열심히 일해도 잘 쓰고 산 사람은 재산이 많지 않은 반면 근검절약의 삶을 산 사람은 재산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능력원칙을 적용할 때 직면하게 되는 두번째의 중요한 문제는 능력이 측정됐다고 할 때 조세의 부담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공평한 것인가의 문제이다.

 

능력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한다고 하는 원칙은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모호한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에 비례해서 부담하는 것도 능력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공평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래서 능력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높은 비율의 세금을 부담하는 소위 누진세가 보편적으로 공평한 세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누진의 정도가 어떤 것이 타당한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누진의 정도가 심해지면 그만큼 자원배분의 왜곡이 가속적으로 악화되는 원칙간의 상충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가간 자원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게 되면서 누진세를 통한 분배개선정책은 현저히 후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이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갖고 새로운 논의를 해보자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논의를 해도 결론을 내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 새롭게 어떤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능력원칙의 적용에 있어서 우리나라 조세정책이 범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잘못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득이나 자산보유가 낮은 사람에 대한 완전 면세를 정의로운 조세정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부담한다는 것은 능력이 많으면 많이 부담하지만 능력이 적어도 적은대로 적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소득이 있는 사람들 중 거의 절반은 전혀 세금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

 

물론 최빈층의 경우 소득이 생계비에도 못 미칠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는 담세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이 생계비에 못 미쳐서 작은 세금도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소득자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더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제도는 소위 종합부동산세이다.

 

국민의 극소수만 부담하게 함으로써 다수의 지지를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담세력에 따른 공평한 부담이라고 말할 수 없다.

 

종합부동산세에 해당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재산세를 부담하니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은 소득세를 부담하지 않는 사람도 소비세는 부담하니까 소득세 납세자 비율이 크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같다.

 

더욱 가소로운 것은 종합부동산세의 납세는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선전이다.

 

종합부동산세가 부동산 투기자들에게 세금폭탄을 퍼부어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의도로 도입됐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인데 갑자기 그 투기자들을 사회의 귀족이나 지도층으로 높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민주사회에서 노블레스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응분의 책임을 부담할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하고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생각한다.

 

다수가 소수에게 부담을 지우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합창하게 하는 것은 다중에게 천민의식을 심어주는 질 낮은 포퓰리즘이다. 

 

 

 

 

 



세정신문 기자
- Copyrights ⓒ 디지털세정신문 & taxtime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발행처: (주)한국세정신문사 ㅣ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7안길 11 (서교동, 디.에스 빌딩 3층) 제호:한국세정신문 │ 등록번호: 서울,아00096 등록(발행)일:2005년 10월 28일 │ 발행인: 박화수 │ 편집인: 오상민 한국세정신문 전화: 02-338-3344 │ 팩스: 02-338-3343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화수 Copyright ⓒ 한국세정신문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