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관운이란 게 정말로 있다
을지로에서 근무한 지가 어언 2년 6개월이 다 돼 가고 있다.
재무부에서 나올 때 그렇게 가기를 희망했던 북부세무서.
그곳 부가가치세과에서 큰 사건이 '79년도에 터졌다.
직원이 납세자에게 맞아 죽는 사건을 필두로 각종 비리, 부조리 등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청와대에서 직접 조사를 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많은 직원이 구속되고 파면 해직되는 등 비리사건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 보도되고 있었다.
'정말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재무부에서 국세청으로 나올 때 차관보님이 북부서로 난 발령을 그렇게 바꾸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국 북부서로 가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부가세과에서 차석(次席)을 했을 거고, 그렇다면 영락없이 이번 사건에 휘말려 불명예제대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 일을 보고 '관운(官運)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인사는 절대 무리(無理)하지 않아야 되며 그냥 보내주는 데로 가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敎訓)을 얻었다.
27. 궁여지책 정화 시범세무서
북부사건이 발생하면서 세상여론이 국세청에 아주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수습책의 일환으로 국세청내 정화(淨化)를 제대로 해보는 세무서를 서울에 2개서(남대문, 북부), 부산에 1개 서를 지정해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곳에 가면 진짜로 금품수수 등의 부조리와는 담을 쌓아야 하고, 1년 근무하면 희망대로 무조건 보내주며 승진 등에도 우선을 준다나.
그것 참!
일년 뒤에는 먹어도 좋다는 말인지, 시범서가 아니면 또 그렇게 해도 좋다는 말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헷갈렸다.
그렇다면, 그곳에 가려고 하는 녀석들, 눈 부라리고 찾아봐도 한놈 없을 테고, 그곳으로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됐다.
역시 시범요원(示範要員) 선발에 애를 먹을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적중했다.
뭘 그리 고민하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까지 금품수수로 물의(物議)를 일으킨 전례가 많은 사람을 그리로 보내서 자숙케 하고 개과천선을 시키면 될 것이 아닌가?
정화시범이라면서.
이제까지 금품수수로 물의(物議)를 일으킨 전례가 많은 사람을 그리로 보내서 자숙케 하고 개과천선을 시키면 될 것이 아닌가?
정화시범이라면서.
그런데도 각 서별로 비교적 깨끗하고 착실하며 일 잘하는 사람, 말하자면 '우수한 놈'을 선발하라고 하는 것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발기준이 이렇다면 내가 뽑힐 소지가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왜냐하면, 나도 자칭 '우수한 놈'이라 생각하니까. ㅋㅋ
희망자가 아무도 없어 각 서(各 署)에 직급별로 한 두사람을 골라서 내일 오전까지 명단을 보내라고 청(廳)에서 지시가 온 모양이다.
각 과장이 면담을 하며 시범요원을 고르느라 난리법석이다.
내가 면담(面談)할 차례다.
서예에 조예가 깊은 ○과장이 나를 유혹한다.
"박형 같은 직원이 적격이야. 깨끗하고 참신하고…."
별의별 소릴 다한다.
"박 형, 거기 가면 승진도 빠르고, 자∼알 생각해봐, 우리 과에선 박형밖에 없어."
나는 과장님께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과장님 저 재무부에서 3년을 근무하다 여기 왔습니다."
"승진하려면 거기 그대로 있었을 겁니다. 정말로 생활이 어려워서 나왔습니다."
"그래도 보내실 겁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내 처지가 사실 그랬다.
과장님은 나의 말에 공감을 하셨는지 머리를 끄덕이며 내 이름 옆에 ×표시를 하셨다.
"그래 알았네, 안 간단 말이지? 오케이"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도 시켜 주셨다.
이튿날 아침, 출근을 하니 6급은 아직까지도 선발을 못한 모양이다.
총무과장이 전해주는데 우리 ○과장은 나를 추천하고, 서장님은 ○과장이 좋아하는 직원을 지명해서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티격태격하며 선정을 못하고 있다 했다.
○과장의 위선(僞善)에 정말 씁쓸했다.
나는 서장실로 올라갔다.
"고민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선발됐다.
'야! 이 눔아, 인사는 무리수를 두면 안 돼!'
'어디에 간들 제 할 나름이 아니겠느냐'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