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계장, 빽 한번 써봐" (22)

2007.01.29 15:36:22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김 형사가 부드럽고 조용하게 물어온다.

 

"과장님 아십니까?"

 

"예, 외삼촌입니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진작 말씀을 하시지요."

 

"당신이 말할 기회를 줘 봤소? 무조건 이렇게 까도 되요?"

 

미안해서 그런지 약도 발라주고 종이컵에 든 커피도 가져다 준다.

 

아까 까인 다리는 쓰리고 부어올랐다.

 

나는 그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시범세무서를 만든 취지를 설명하면서 절대로 소문이 나서는 안된다고 통사정을 했다.

 

"이렇게 좀 해주십시오. 김 형사님!"

 

"어떻게요?"

 

"누가 그렇게 했는지 나는 알고 있습니다."

 

"돌려 주고 그 직원을 이리로 데려오겠습니다."

 

"절대 사건화는 말아주십시오."

 

"과장님께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릴께요."

 

그러고는 얼른 그 방을 나왔다.

 

나는 사무실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S에게 전화를 걸어 좀 내려오라고 했다.

 

그는 내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왜 출근을 안해요, 뭔일이 있어요?"

 

"시벌! 그래 임마! 뭔일이 있다"하면서 의자에 앉으려는 그에게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져버렸다.

 

던진 의자에 맞은 옆구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식식대면서 나를 노려 본다. 식당에 있던 직원들의 만류로 둘은 마주앉았다.

 

나는 그동안의 일들을 말해주면서 빨리 돌려주고 오라고 했더니 그는 황급히 밖으로 나간다.

 

나는 사무실에 올라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따르릉…" 김 형사 전화다.

 

"박형! 이거 안되겠는데요!"

 

헉! 그것 참! 반만 돌려주고 다 돌려준 것처럼 영수증만 받아갔단다.

 

나는 그가 오면 알아서 할 테니 제발 보안 좀 지켜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잠시후 돌아온 그는 다 됐으니 빨리 가 보자고 했다.

 

"당신 혼자 가시오. 나는 모르겠소!"

 

"왜 그래요? 박형."

 

"? … 왜 그런지 모르겠소?"

 

다시 전액을 돌려 주고 온 그를 데리고 시경으로 갔다.

 

그는 수도 없이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무원으로서의 자세를 망각한 적이 없이 성실히 근무하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이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중략)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한 경험이 많았는지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고 입에서는 옳은 말씀이 줄줄이 잘도 나왔다. 진정 그렇다면 누가 추천했는지 정화시범요원으로서는 적격(適格)이었다.

 

"너 직급이 뭐야?"

 

"네, 네, 6급입니다"

 

"직책은?"

 

"네, 네, 주무입니다"

 

"일어나시오! 앞으로 맨바닥에 꿇어 앉는 잘못은 절대 하지 마시오!"

 

"네, 네, 네."

 

그렇게 해서 사면(赦免)을 받은 셈이다.

 

이걸 계기로 남대문에서는 정신을 좀 차려야 되는데 그후에도 별 차도(差度)가 없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사는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오리무중, 귀신이 곡할 노릇, 미치고 환장할 일이라고.

 

31. 오리무중 근무평정

 

과장이 나를 부른다.

 

"박형 축하해, 박형이 우리 서에서 근평 '수1등' 이야."

 

"계장도 아닌 사람에게 그런 전례가 없어."

 

"모두 과장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러한 과장님의 말씀을 6월과 12월에 걸쳐 두번이나 들었다. 지난 9월달에는 교육원에서 한달동안 부가가치세반 교육을 1등으로 마치고 돌아왔더니 '모범(模範)공무원' 표창이 나와 있었다.

 

나를 알아 주신 서장님께 감사드린다.

 

정말이지 남대문에서 죽도록 고생한지 일 년이 다 됐다.

 

이제 시범세무서를 떠나야 한다.

 

고생도 했지만 보람도 있었던 남대문 시절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공사(公私)생활에서 항상 여유와 지혜로 참으로 배울 점이 많았던 '정왕선' 서장님을 만나는 행운을 함께 얻었다.

 

엄청난 독서(讀書)로 인한 해박한 지식과 고품격 유머는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지방청에서 '희망지(希望地)'를 써내란다.

 

나는 '중부청(中部廳)'을 희망지로 써냈다.

 

그런데 지방청으로 가겠다고 희망한 직원은 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청 인사계에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데 왜 하필 지방청을 희망하냐?"

 

나는 근평에서 '수1등'을 두번이나 받았기 때문에 내년의 승진시험에 대비를 해야 될 것 같고 아무래도 일선보다는 청이 좀 유리할 것 같아서 지방청을 희망했음을 설명했다.

 

그 당시에는 일년만 수(秀)를 받고 모범공무원 표창이 있으면 시험을 볼 수 있는 대상이 됐다.

 

"그런데 니가 수1이 아닌데…"

 

인사계에 있는 친구가 딱하다는 듯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린감?"

 

나는 택시를 불러 타고 지방청으로 갔다. 서(署)에서 올라온 근평 서류를 보았더니 두 번 모두 S가 1이고 나는 2였다.

 

또 그의 장난임에 틀림없다.

 

계장자리를 바꾸면서 그가 한 말은 거짓인가?

 

그럼 과장이 두번이나 내가 수1이라고 한말은 또 뭐냔 말이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사무실로 돌아와 과장에게 따졌다.

 

"틀림없이 박형이 수1이었는데 무슨 소리냐?"

 

이런 제기랄! 과장님도 모른다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래도 나는 과장님을 원망하며 막 퍼부어 버렸다.

 

"정신 차려요! 과장님! 그렇게 S에게 놀아나지 마시오! 정말로 한심합니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의문을 풀려 하면 서장님과 S에게 물어 봐야 하는데 두분 모두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니 어찌하란 말인가?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오리무중, 귀신이 곡할 노릇, 미치고 환장할 일이라고.

 

다음해 S는 시험을 쳐서 합격을 했고, 나는 숫제 대상(對象)도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당하고만 사는지 내가 미워졌다.

 

모두들 좀 바르게 살면 안 되나?

 

욕이나 해버릴까!

 

내가 나에게 욕을 하는데 누가 뭐라 할라나?

 

에라 모르겠다.

 

"박찬훈! 너는 임마! 조∼옷 같은 놈이야!"

 

<계속>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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